청산별곡에 붙여 (3회)

류임현 기자 승인 2023.10.15 15:37 | 최종 수정 2023.10.15 15:40 의견 0

“자, 어때? 이건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 특별히 주문해서 만들어 준거야. 총알도 진짜랑 똑같애. 너흰 이런 걸 본 적이 없을 꺼야. 대장이라면 이런 것 정도는 가져야 공산당 빨갱이도 물리치고 대통령 각하도 보호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대장은 으쓰대며 이리 저리 땅 땅, 모두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쳐댔다. 야, 정말 멋지다. 진짜 대장 같지? 우익이가 나누어 준 과자를 입에다 털어 넣으며 모두 한 마디씩 오물거렸다.

번쩍 번쩍 대장의 그 멋진 총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통에 나는 밤이 늦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 내가 그 걸 가질 수만 있다면, …… 그 날도 아버지는 술통에 빠져 진창이 된 모양으로 들어왔다. 보나마나 막걸리 냄새가 푹 젖어 있을 두 서너개의 신문 뭉치를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났다. 흥, 선생님이면 단가? 대장도 못하면서 맨날 술은. 다음날엔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부스스한 눈에다 시큰둥한 입을 십 리나 빼물고서 하루 왠 종일 어머니를 애타게 했다. 밥 맛이 없어. 싫어. 아버지 어디 갔어? 안방에서 또 집어 던질 게 뻔한 신문을 보는 아버지께로 조르르 달려 갔다. 혹시 모르잖아?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는 왜 대장 안 했어?”

애교를 섞느라 약간 콧소리를 냈다.

“으응, 왜 안 했어? 거 왜 있잖아, 별을 몇 개나 달고 총도 막 찬 국군 대장 말이야.”

아버지가 신문을 와락 움켜 쥐었다. 눈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기, 기만이 아버지는 대장이야. 그래서 기만이는 멋진 총도 가지고 대장도 자기 차지야. 거기다,”

“그만해 두지 못 해!”

아버지가 빽 고함을 내질렀다. 대장도 못 된 주제에 고함은 왜 질러? 미웠다. 마구 대들고 싶었다.

“아버지는 왜 대장 못해? 맨날 술이나 먹으니까 그렇지. 니도 총 구해줘. 그해내란 말이야,”

철썩, 그렁 그렁 눈물 맺힌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아버지의 손이, 한 번도 내게 매를 든 적이 없었던 아버지의 손이 내 뺨 위에서 하얗게 떨리고 있었다. 오늘로 당장 짐을 싸라는 아버지의 고함 소리.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어머니, 저 성홥니다.”

여전히 비탈진 산 길을 몇 걸음에 내들은지라 연신 시근거렸다. 급할 이유라고도 전혀 없었지만, 동네 어귀를 지나고 부터는 이미 왕래가 잦아든 고샅 고샅을 거의 뛰다싶이 걸어왔던 것이다.

덜커덕, 덜커덕, 이제는 문이라고 조차 하기가 민망스런 삽짝이 바람에 틀썩대는 소리를 냈다. 한 때 온 마을을 휩쓴 새 대문 달기, 새 지붕 갈기 등의 거센 바람에도 끝내 고개를 돌려 버리신 아버지의 고집 덕에 여지껏 달려 있는 명 긴 놈이었다.

“밖에 누구 왔어예?”

제수씨였다. 여섯 살이 아래인 동생 창형이 장가를 든 지가 벌써 2년째, 기어이 농고로 학업을 중단 시켜 버린 아버지의 뜻에 좇아 농사를 대물려 받은 날 일찌감치 장가를 들었던 것이다.

“예, 제수씨, 접니다.”

여기 저기 널어 둔 푸성귀의 아직은 칠칠한 모양이 눈에 들어와싸. 선뜻 방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은 것은 그럭 저럭 아직 옛 모습을 가지고 있는 집의 요모 조모를 익혀보기 위해서였다.

“뭐라꼬, 성화라꼬?”

그닥 성치 않을 몸임에도 노모가 먼저 뛰어 나왔다. 연락 한 줄 없이, 그 흔한 전화 한 통 없이 들이닥친 맏아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놀라셨으면 …… 남편에게나 자식에게 싫은 내색은 커녕 눈 매 한 번 치뜨는 법 없이 정성을 다해 살아온 여인이었다. 그런 노모가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그는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어느 신문사의 수습 기자로 합격을 하고, 또 그의 몇 개 시가 잡지며 신문 등에 실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노모를 모시기로 결심했었다. 아내가 거세게 반대했지만 그게 도리인냥 했다. 그러나, 서울의 서자도 다 떼기 전에 그는 난생 처음으로 노모의 벽력같은 고함 소리를 들었다. 비석도 상석도 그 말도 더는 없을 청천의 홍적의 벼랑이었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이눔, 그걸, 말이라꼬, 하나? 저 들우에, 그 바람 밭에, 니 아버지 영혼이 여즉 떠돌낀데, 내가 우예 예서 뜬 다 말이고?”

부장님이 특별 휴가를 주셨노라, 좀 쉬고 싶었노라, 떠벌이는 아들 앞에서 연신 쿨쩍대던 노모마저도 잠이 든 것은 새벽녘이 가까워서였다. 툇마루 끝에 나와 앉으니 수 많은 별이 품에 들었다.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그 밤에도 별이 유난히 빛났지. ……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온 지 채 사흘도 되지 않아 나는 도로 가방을 꾸렸다. 한창 열이 더해가고 있을 학회도 은근히 궁금했지만, 곰팡내 나는 골방에서 술내 젖은 노인네의 알맹이 없는 미문(美文)의 배열을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내려온 지 꼬박 이틀을 아버지는 술로 보냈다. 초야에 묻혀 산 천석 고황의 선비를 끝없이 찬양하는가 하면, 이태백을 주색으로 끌어들여 함뿍 취하도록 만들었다.

“살어리 살어리 랏다, 청산에 살어리 랏다, 이 녀석아, 내가 얼마나, 쿨룩 쿨룩, 살어리, ……”

청산 별곡의 후렴구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기 시작할 때 나는 아직은 쌀쌀한 초여름의 밤 속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저런 패배적이고 감상적인 자기 합리화는 비겁하다. 아버지의 귀향은 철저한 현실 도피다. 부마 항쟁의 횃불조차 여전히 그 향 끝을 피워 올린다. 다 끝난 것은 아버지, 당신이 되었을 뿐이다. 아무도 안 된 것을 없다. 아버지 당신이 자진하여 안된 것 뿐이다.

그 때 고향으로 되돌아 온 아버지는 라디오며 신문, 심지어는 책까지 다 없애 버리고서 낮에는 농사인에, 밤에는 술과 별에만 매달려 살았다. 하늘로부터 못박혀 운명 지어진 몫이기라도 한 듯 논을 매고 밭을 갈고 채소를 걷는 아버지의 눈 빛은, 만약 누군가 다시 그 일들에을 그만 두게 하기만 한다면 모조리 태워 없애 버릴 듯이 이글거렸다. 철철이 꽃을 바꿔 심고 울타리를 매만지며 갖은 정성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차라리 안타까운 발버둥 같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견딜 수 없으리만치, 미웠다. 이를 악 물었다. 미우면 미울수록 더욱 세게, 그러고서 나는 쓰러질 때까지 공부를 했다. 그 덕에 시골 학교에서이기는 하지만, 나는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었고, 읍에서는 아버지를 이어 또 하나 수재가 났다고 떠들어댔다. 내가 서울의 최고 명문대에 1차로 터억 합격을 했을 때는 온 동기가 잔치집 같이 떠들썩 했고, 여전히 시큰둥한 아버지를 뺀 나머지 모든 일가 친척들은 공연히 어깨에 힘을 주며 다녔다. 내 속의 억누를 길 없는 거대한 욕망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제 서울로 돌아간다. 바로 너희들 속으로.

“기만이라는 녀석은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을 했고, 우익이라는 놈은 미국 무슨 대학인가에 경영학 공부를 하러 갔대. 자식들, 배경 하나는 튼튼하더마. 미래의 장군에, 재벌 2세라. 쳇, 황송스럽군. 도대체 너는 무슨 재주로 그런 권력의 핵심 인물들하고 연줄을 맺었냐?”

“으응, 아니. 국민학교 동창이야. ……”

한 발 멀어진다. 아니, 어쩌면 출발선이 틀린 우리에게는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간격일런지도 모른다.

“야, 어쨌든 네 부탁 실행해 바쳤으니 너 우리 문학회 드는 거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냐, 임마. 난 네 녀석 시 쓴 거 보고 반했다, 반했어.”

내가 겨우 겨우 학점 받고, 졸업 해서, 어느 회사 말단으로 시작할 때 너희들은 또 다시 내 머리 위에 서겠지? 하얀 와이셔츠 입고 출근하는 내 다리는 파란 작업복 입은 동식이 녀석 어깨를 밟고, 또 그 놈은 허리 굽은 녀석의 아버지 어깨에 걸터 앉고, …… 흥, 서울은 욕심대로 모든 일을 해결해 주지 않아. 쾅 쾅 못박혀 고정 되어 있을 뿐이다.

“야, 최성화, 너 왜 또 수업 빼먹었어? 에그, 술 냄새. 아예 여기 다 출석부를 하나 만들어라.”

혹시 이런 자학적인 절망이 자신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야, 재미~ 있는 희극 하나 이야기해 줄까? 제목은 『제자리 뛰기 – 관객은 어딘가 숨어 조소하고 있음.』 혹시나 하는 바보같은 착각에 빠진 놈, 왜 뛰는지도 잊어 버린 놈. 하하하, 보는 놈은 우습지?”

“시 쓴다고 설치더니 애 하나 완전히 갔군, 갔어,”

민혁의 반 강제적 권유로 가입한 어느 낯 빛 어두운 문학회는 내 절망스런 좌절과 분노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학회나 토론이 진행 될 수록 숨이 컥컥 막히는 짓눌림을 맛 보았고, 틀이 잡혀가는 시작(詩作)에 매료 되어 가면서 심한 언어의 빈곤을 느꼈다. 젊은이에게 걸맞는 순수한 패기와 도전, 그리고 낭만, –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에 대한 도취일 수록 더욱 좋다. 간접화법, 그래, 거리까지 용서 받을 수 있다. 킥킥킥, 어느 새 나는 별종 취급을 받고 있었고, 함께 공부에 열중했었던 친구들과도 차츰 멀어졌다. 나는 거짓말 속을 헤집어 잃어버린 말들을 찾아야 한다. 거울 속에선 왠 낯선 사내가 나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 깨우지 마이소. 학교에 일이 있어 갑니다. 공부 밀린 것도 좀 있고, ……”


그 후 난 아버지에게 딱 한 번의 편지를 보냈을 뿐이다.

『아버지, 저 휴학 했습니다. 부산. 그 곳에 계심을 자랑스럽게 여기고나 계십시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기필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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