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에 33층 '튀르키예 하우스' 재건축 타진…소방당국 승인 지연
애덤스 뉴욕시장 2021년 에르도안 준공식 참석 앞두고 '해결' 청탁 협의
최근 에릭 애덤스 미국 뉴욕 시장이 뇌물 혐의로 기소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과시욕이라는 진단이 제기됐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과시욕에 더해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선 불법행위도 불사한다는 튀르키예 당국자들의 삐뚤어진 충성심이 애덤스 시장의 추락을 이끌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03년 총리에 취임하면서 권력을 잡은 뒤 튀르키예 최대규모의 모스크 건설에 나서는 등 대형 건축물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모습을 보여왔다.
권력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나가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주목한 것은 뉴욕 맨해튼이었다.
자신의 영도 아래 나날이 성장하는 튀르키예의 국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장소로는 유엔 본부가 위치한 뉴욕이 가장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후 튀르키예 정부는 1970년대 말부터 유엔 대표부와 총영사관으로 사용됐던 맨해튼의 낡은 11층 건물을 초고층 건물 '튀르키예 하우스'로 재건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3년 기존 건물 철거작업을 시작으로 3년 안에 마무리될 계획이었던 재건축 작업은 다양한 이유로 늦춰졌다.
튀르키예 당국자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건축과 관련한 뉴욕의 복잡한 소방법이었다. 법 규정 탓에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튀르키예 당국자들은 준공 시기를 더 늦출 여유가 없었고 그들이 찾아낸 해법은 당시 뉴욕 브루클린 구청장으로 주목받았던 애덤스 시장이었다.
이들은 애덤스 시장에게 호화 여행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친분을 쌓아나갔다.
이후 튀르키예 당국자들은 2021년 9월 유엔총회 방문을 앞둔 시점에 애덤스 시장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엔총회 참석 기간 튀르키예 하우스 준공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뉴욕 소방당국이 건물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아 행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검찰 소장에 따르면 당시 튀르키예 총영사는 애덤스 시장의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애덤스 시장이 튀르키예를 도울 차례"라고 말하면서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결국 애덤스 시장은 소방당국에 압력을 행사했고, 튀르키예 하우스에 대한 임시사용허가가 내려졌다.
사용허가가 내려졌다는 소식을 직접 전한 애덤스 시장에게 당시 튀르키예 총영사는 "당신은 튀르키예의 진정한 친구"라는 문자로 감사의 뜻을 밝혔다.
한편 애덤스 시장은 최근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열린 기소인부절차에 출석해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뇌물과 불법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부인했다.
애덤스 시장의 변호인은 법원에 뇌물 혐의에 대한 공소기각을 요청하면서 "정치인에 대한 예의와 감사표시는 불법 행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애덤스 시장은 공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백을 주장하며 시장직에서 사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애덤스 시장은 회견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선거운동 규칙과 법규를 준수했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며 "뉴욕시민들은 판단을 내리기 전에 우리의 항변을 들어달라"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전날 공개한 영상에서 검찰의 기소가 총체적으로 잘못되고 거짓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내에서도 진보 성향의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을 중심으로 애덤스 시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애덤스 시장이 사퇴를 결정할 경우 주마니 윌리엄스 뉴욕시 공익옹호관이 시장 직무대행을 맡으며 90일 이내에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뉴욕 경찰 출신의 정치인인 애덤스 시장은 범죄 억제 공약을 내걸고 뉴욕시 110대 시장으로 선출돼 2022년 1월부터 업무를 시작했으며 임기는 오는 2026년 1월까지 4년이다.
현직 미국 뉴욕시장으로 처음 형사기소된 에릭 애덤스(64) 시장에 대한 미 연방검찰의 브리핑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시장에 당선되기 수년 전부터 튀르키예로부터 호화 여행 접대를 받고 불법 선거자금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연방검찰은 또 튀르키예 외에 한국 등 5개국과 애담스 시장의 관계를 추가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6일(현지시간) 애덤스 시장 공관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실시해 추가 기소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뉴욕 남부연방법원이 이날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연방검찰은 애덤스 시장에 전자금융 사기, 뇌물 수수, 불법 선거자금 모금 등 5개 범죄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적용된 혐의에는 전자금융 사기 등을 공모한 혐의도 포함됐다.
검찰은 애덤스 시장이 뉴욕 브루클린 구청장 시절이던 지난 2014년부터 외국인 사업가와 튀르키예 정부 당국자로부터 부적절한 금품 혜택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현재 검찰은 금품 수수액은 10만 달러(약 1억3천만원)를 웃돈다고 파악하고 있으며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튀르키예 항공으로부터 여러 차례 무료 항공권을 제공받거나 비즈니스석으로 무료 업그레이드를 받았고, 튀르키예 수도 이스탄불에 머물 때 고급호텔 숙식을 여러 차례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2021년 뉴욕시장 선거에서 튀르키예 정부와 관련된 단체로부터 선거 자금을 모금했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외국 정부와 외국 국적자, 외국 단체가 선거 자금을 제공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애덤스 시장은 이와 관련된 메시지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이 같은 혜택을 제공받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려 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검찰은 애덤스 시장이 이 같은 수혜 대가로 2021년 소방당국자에 압력을 행사해 튀르키예 정부가 뉴욕시에 건립 중이던 '튀르키예 하우스'의 임시 사용허가를 무리하게 내주도록 했다고 판단, 그에게 뇌물죄를 적용했다.
당시 애덤스 시장은 민주당 우세 지역인 뉴욕시에서 민주당 시장 후보로 지명돼 차기 시장 당선이 유력한 상태였다.
검찰은 "애덤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외국인 뇌물 공여자들은 그와의 부패한 관계 속에서 이득을 챙기려고 했다"며 "특히 2021년 애덤스의 뉴욕 시장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라고 밝혔다.
더 나아가 검찰은 추가 기소를 예고한 상태다.
검찰은 이날 새벽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뉴욕시장 공관을 압수수색해 애덤스 시장의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에도 애덤스 시장과 측근 등을 상대로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압수한 바 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검찰이 애덤스 시장과 튀르키예와의 관계 외에 한국과 이스라엘, 중국,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등 5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들 국가와 관련한 정보 요구는 지난 7월 애덤스 시장과 선거캠프 등에 발부된 대배심 소환장을 통해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근 한 달 새 애덤스 시장 측근 인사들로 수사를 확대한 상태다. 이 여파로 에드워드 카반 뉴욕경찰 국장을 비롯해 뉴욕시 고위직들의 사퇴가 잇따랐다.
데이미언 윌리엄스 뉴욕 남부연방지검장은 이날 회견에서 "애덤스 시장은 명확한 '레드라인'을 여러 차례 넘었다"며 "이번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믜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