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vs 트럼프' 문화전쟁?…각계 저항에도 불 붙을까

트럼프, 보조금 동결 이어 면세 박탈 위협…수십억 달러 타격

'저항 주도' 가버 총장은 유대인

…"신중한 성격의 평생 학자"

바이든 기억력 지적했던 한국계 허 前특검도 하버드 대리인단에

국세청 동원, 정치적 논란…하버드 상징성 노리고 강행 가능성

예일·스탠퍼드·MIT 등 잇단 지지…법조·언론계 확산도 주목

하버드 대학교 전경과 로고 (사진 : 하버드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로고.



미국의 번영과 학문적 성취의 상징과도 같은 하버드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국력을 반영'하는 지위를 두고 원론의 방패 vs. 행정의 민권주장이 한 판 승부가 붙은 것이다.

앞 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과 관련해 미국 대학 내 친(親) 팔레스타인·반 유대주의 시위로 나뉘며 각자격화로 치닫자 각 대학들로 학칙 개정을 요구해 왔다. 이달 초엔 하버드대를 비롯해 60여 개의 대학에 “반유대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해 미국 학교의 평판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며 ‘지속적인 재정 관계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9가지 조처 실행’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지난 4월11일 하버드에 보낸 서한에는 대학의 거버넌스, 채용관행, 입학 절차 등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이 요구되었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 금지와 다양성·평등·포용(DEI) 프로그램 폐지 등도 포함됐다.

행정부는 이러한 조치가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를 억제하고 대학 내 '극좌 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린다 맥마흔 교육부 장관은 "하버드대는 여러 세대에 걸쳐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지만, 반 유대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해 하버드대의 평판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버드 총장 앨런 가버(Alan Garber)는 4월14일 공개서한을 통해 이러한 요구는 대학의 제1차 수정 헌법상 권리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하며 연방 정부의 법적 권한을 초월한다고 비판했다.

가버 총장은 학교가 반유대주의를 퇴치하기 위해 앞 서 다양한 조치를 취했고, 앞으로도 이 문제에 계속 노력하겠지만, 정부의 요구는 이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고 꼬집었다.

그는 '어떠한 정부도 사립대학의 교육 내용, 입학·채용 기준, 연구 분야를 통제 할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 정부는 하버드대가 연방 지원금의 삭감에도 정책 변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자금 지원의 동결에 그치지 않고 '면세 지위'도 박탈하겠다고 위협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번 조치가 반유대주의 근절과 대학의 책임 강화를 위한 필수적 조치로 보고 있다.

교육부 산하 반유대주의 대응 TF(태스크 포스)는 하버드가 "연방 자금 지원에 걸맞은 민권법 준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대학의 "특권적 태도"를 비판했다.

반면 하버드 대학교는 이 번 요구가 학문적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정치적 압박으로 주장하며 가버 총장은 "하버드의 가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법적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전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면세 지위는 전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따른 행동에 달렸다는 점을 기억하라"며 "만약 계속해서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며 테러리스트의 영감을 받거나 (테러리스트가) 지지하는 '질병'을 추진한다면 아마 하버드는 면세 지위를 잃고 정치 단체로 세금이 매겨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미국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수년간 22억 달러(약 3조1천억원) 규모의 보조금과 6천만 달러(약 854억원) 규모의 계약을 동결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추가 조치를 거론한 것이다.

14일 하버드대가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한 트럼프 정부의 교내 정책 변경 요구를 주요 명문대학 중 최초로 공개 거부한 지 하루 만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밤 하버드대의 입장을 다룬 뉴스를 보고 직접 조치 수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런 연쇄적인 조치는 하버드대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앞서 행정부가 발표한 연방 보조금의 동결만으로도 세계 선두권으로 분류되던 하버드대의 첨단 의료 및 과학기술 연구 역량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연방정부가 지급한 보조금은 6억8천600만 달러(약 9천800억원)로, 이는 하버드대 총 후원 수입의 68%를 차지했다.

물론 하버드대는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5천320억 달러(약 760조원)의 기부금을 받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이다. 이는 세계 100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규모보다 크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들 기금은 상당 부분 기부자에 의해 사용처가 제한돼 있어 당장 연방 보조금의 결손을 막는 데 사용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면세 지위까지 박탈되면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여기에 대학에 대한 기부금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까지 영향을 받을 경우 초부유층의 기부금 규모도 축소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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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다만 미국 연방 법률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대통령이 국세청(IRS)의 세무조사를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를 박탈할 만한 명분도 없는 만큼 현실화하기 어려운 압박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를 박탈하려면 IRS가 조사를 진행한 뒤, 정치적·경제적으로 중립성을 잃어버렸다는 등의 문제를 발견해야 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세무 시스템을 이용해 정적을 선택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일종의 독재"라며 "만약 정말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가 박탈된다면 이는 의료·과학의 발전과 서구사회의 가치, 후손들의 기회, 세계 속의 미국의 위상을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불법 이민자 대응 등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을 무릅쓰고 IRS를 활용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

소송 등을 무릅쓰고 이를 실행하는 것 자체가 하버드대에는 압박이 될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게티 이미지=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정책에 대하여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즉시 모교인 하버드 대학교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경 요구를 '불법적 억압'이라고 규정하며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하버드는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불법적이고 거친 시도를 거부하는 동시에 모든 하버드 학생이 지적 탐구, 치열한 토론, 상호 존중의 환경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처를 함으로써 다른 고등 교육기관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교육기관들도 이런 행보를 따르기를 희망해보자"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캠퍼스내 반유대주의 근절 요구에 맞서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하버드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 대학교 뿐 아닌 컬럼비아 대학교 4억 달러 동결, 코넬대 10억 달러 동결, 노스웨스턴 대학교 7.9억 달러 동결을 결정했고, 하버드 대학교의 교수진과 전국대학교수협회(AAUP)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자금 검토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헌법적 권리와 학문의 자율성을 두고 법정 논쟁으로 이어지며 타 대학들의 저항을 부추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하버드대의 이번 결정을 주도한 앨런 가버(69) 총장에게도 항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가버 총장은 전날 교내 커뮤니티에 보내는 글에서 "우리 대학은 독립성이나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놓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며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해온 정책 변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버 총장은 트럼프 정부가 연방 기금 지원을 유지하는 대가로 기존 요구 조건을 넘어서는 조건부 학칙 연장을 요구했다며 "이는 반유대주의를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와 협력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가버 총장은 지난해 1월 반(反)유대 논란에 이은 논문 표절 의혹으로 클로딘 게이 당시 총장이 물러난 뒤 임시 총장을 맡았다 같은 해 8월 총장에 오른 인물이다.

총장직을 맡기 전에는 13년간 하버드대 교무처장을 맡았다. 경제학과 의학을 전공한 그는 하버드 의학전문대학원과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 T.H 찬 공중보건대학원 등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대인인 그는 지난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급습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하버드대가 발표한 성명에서 하마스의 테러 행위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주목받기도 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평생 학자이자 신중한 성격을 지닌 가버 총장이 저항의 지도자가 되기에 타고난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면서도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그의 대응은 민주당과 하버드 캠퍼스의 많은 사람에게 모범으로 환영받고 있다"고 짚었다.

로버트 허 전 특검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대통령 또한 물러서지 않고 22억 달러(약 3조1천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동결한 데 이어 면세 지위 박탈까지 위협하면서 법정 공방이 예상되는 가운데 하버드대 법률대리인단의 면면도 주목된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기밀 유출·불법보관 의혹 사건을 수사한 로버트 허 전(前) 특별검사가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한국계인 그는 이 사건의 수사 결과 보고서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인지능력 문제를 적시해 파장을 낳았다. 허 전 특검은 논란 당시 자신이 공화당원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당파적인 정치는 내 업무의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허 전 특검은 하버드대 영어영문학과 출신이다.

그와 함께 윌리엄 버크도 대리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백악관의 법률 고문을 맡았고,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해 개입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수사 당시 트럼프 대통령 측 인사 여러 명을 변호했다.

하버드대 당국에 저항할 것을 요구하는 동문 시위대 (사진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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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당국에 저항할 것을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학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압박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하버드대 지도부의 저항을 촉구하고 있다.


이렇게 즉각적인 강경 대응이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하버드가 가진 상징성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버드대는 1636년에 설립된 미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1776년에 독립한 미국보다도 역사가 140년이나 길다.

역대 미국 대통령만 8명을 배출하는 등 아이러닉하게도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과 그 성취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 곳곳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좌파 엘리트'의 성채를 무너뜨리겠다는 '큰 그림'의 일부분으로 명문대학과 한 판 붙기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반드시 굴복시켜야 할 대상인 셈이다.

반대로 하버드대가 '깃발'을 들면 트럼프 대통령의 '문화 전쟁'에 직면한 각 기관의 저항이 들불처럼 확산할 수도 있다.

특히 대학들만이 아니라 그간 다양한 방식의 직간접적 압력을 받아 왔던 대형 로펌 등 법조계나 언론계 등에서도 반발이 이어질 수 있다고 NYT는 전망했다.

실제 대학가에서는 앞 서 유대인들이 소송을 걸었던 상대방 하버드 대학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 BBC에 따르면 예일대에서는 수백 명의 교수진이 공개서한을 통해 "미국 대학들은 민주사회의 기반이 되는 원칙인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에 대한 비상한 공격에 직면해 있다"며 "교수진이 한목소리로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다.

스탠퍼드대는 총장과 교무처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국가의 과학 연구 역량을 망가뜨리거나 정부가 민간 기관을 장악하는 방식으로는 건설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밝혔다.

매사추세츠공대(MIT)는 15일 하버드의 뒤를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거부했다.

고등교육 비영리조직인 미국교육협의회(ACE) 테드 미첼 회장은 "하버드가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면 다른 기관들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는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면제 지위 위협에 대해서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 거부를 앞둔 지난주, 7억5천만 달러(약 1조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WP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