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주도 '김문수→한덕수 후보교체', 당원투표 부결로 무효화
金 "강제 단일화" 반발에 절차적 하자·가처분 리스크 등 비판론 고조
김문수-한덕수 2차 회동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국회 사랑재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만나 회동하고 있다. 2025.5.8 [공동취재]
국민의힘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 전 당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로 한덕수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운명이 엇갈렸다.
당내 경선에서 최종 승자가 되고도 후보 자격을 박탈당하며 백척간두에 섰던 김 후보는 11일 기사회생했고, '기호 2번'을 굳힌 듯 했던 한덕수 후보는 출마 선언 8일 만에 대권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사실상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현재 파장이 만만치 않은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국민의힘이 김문수 대선 후보를 한덕수 후보로 교체하려던 작업은 11일 전면 중단됐다. 당원들이 투표를 통해 지도부의 '강제 단일화'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결과다.
국민의힘은 전날 오전 9시부터 12시간에 걸쳐 한 후보로의 교체에 대한 찬반을 묻는 전 당원 투표를 실시했다. 당 지도부는 투표를 실시할 때만 해도 무난한 가결을 예상했다.
그러나 밤 11시에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열어 확인한 투표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구체적인 수치는 비공개에 부쳤으나, "근소한 차이로 후보 재선출 관련 설문이 부결됐다"고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밝혔다.
김 후보는 즉각 당 대선 후보 지위를 회복했고, 한 후보로의 교체를 확정하기 위해 이날 오전 8시로 소집 공고했던 전국위원회는 취소됐다.
지난 9일 밤부터 전날 새벽까지 밤을 꼬박 새워가며 비대위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열어 김 후보 선출 무효화, 새 후보자 선출 의결, 한 후보 입당, 한 후보 재선출 등의 안건을 일사천리로 의결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이같은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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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나서는 권영세 비대위원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대선 후보 교체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2025.5.10
지도부 내부에서는 당초 김 후보가 전날 법원에 제기한 후보 교체 절차 효력정지를 위한 가처분 신청 결과를 주시하면서도, 이번 당원 투표가 부결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진행됐던 '단일화 찬반·시기' 당원 조사에서 87%라는 압도적 수치로 지도부의 '후보등록일 전 단일화 로드맵'에 힘이 실렸고,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한 각종 외부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 지지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 등이 판단 근거였다.
그러나 당원들은 판단은 달랐다. 여기에는 정상적 경선을 거친 후보를 내치면서 정당 민주주의를 역행한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지도부가 사실상 한 후보를 옹립하는 모양새가 된 데 대한 당원들의 반감이 다층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발하는 김 후보 측의 잇따른 가처분 신청으로 대선 정국에서 당내 문제가 법정 다툼으로 비화하는 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전 대구시장, 안철수·나경원 의원을 비롯해 비주류 의원들을 중심으로 "쿠데타", "막장극", "약탈" 등 거센 비판이 쏟아진 데다 대선 국면에서 '범보수 빅텐트'의 발판을 마련하기는커녕 지지층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이날 전 당원 투표 결과 후보 교체 절차는 중단되고 김 후보가 복귀했지만, 당과 후보 사이에는 깊은 앙금이 남았다. 의원들 사이에도 적지 않은 생채기가 남았다.
계엄·탄핵으로 치러지는 이번 조기 대선에서 이미 불리한 구도에 놓인 국민의힘이 공식 선거운동 개시를 하루 앞두고 이같은 초유의 파동이 벌어진 데다, 그 후폭풍까지 겹치면서 대선을 제대로 치르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 친한(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의원 16명은 공동 성명을 내고 "비대위는 무리한 결정으로 당원과 지지자에게 큰 실망과 상처를 줬고, 무엇보다 대선에 큰 악재를 만들었다. 이 책임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권영세 비대위원장의 사퇴만으로는 그 책임을 다하기 어렵다"며 "이번 사태에 깊이 관여해 온 권성동 원내지도부의 동반 사퇴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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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나서는 김문수 후보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10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당의 후보 선출 취소 가처분신청 사건 심문 기일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5.5.10
◇ 당심이 살린 김문수…尹 탄핵반대 金 후보 등록 후 대선 레이스 본격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는 후보 선출 일주일 만에 낙마 위기에 처했다가 기사회생했다.
국민의힘이 1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전 당원을 대상으로 대선 후보를 한 후보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찬반을 묻는 ARS 조사를 한 결과,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지도부가 추진한 후보 교체 안건은 부결됐다.
국민의힘 전신 정당 소속으로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 등을 지낸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영입되면서 정치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탄핵 반대 입장을 유지하며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연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진영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했던 김 후보는 결국 지난달 9일 국민의힘 입당하며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김 후보는 당 경선에서 한덕수 후보와의 조속한 단일화를 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을 부각하며 민심과 당심을 얻었다.
최종 경선 당원투표에서는 득표율 61.25%(24만6천519표)를 기록, 경쟁자였던 한동훈 후보(38.75%, 15만5천961표)를 20%포인트 이상 앞섰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으로 보였던 김 후보는 후보 선출 직후부터 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 이내 단일화를 원하는 지도부와 충돌하며 갈등을 빚었다.
지도부는 대선 후보 최종 경선 선거인단(책임당원 포함)을 대상으로 단일화 시기를 묻는 여론조사를 진행하며 당심(黨心)으로 김 후보를 압박했다. 당원의 86.7%(18만2천256명)는 단일화 시기를 두고 '후보 등록 전에 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도부의 후보 교체를 막기 위해 전국위원회·전당대회 개최를 금지하고 후보 지위를 확인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지만, 기각되면서 상황은 김 후보에게 더욱 불리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전 당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마지막 후보 교체 찬반 투표에서 당원들은 김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당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들과 비주류 의원들도 지도부를 비판하며 김 후보를 엄호했다.
경선 후보들은 페이스북에 북한도 이렇게는 안 한다"(한동훈), "두 X이 한밤중 후보 약탈 교체로 파이널 자폭을 하는구나"(홍준표), "막장극을 자행하고 있다"(안철수), "국민의힘의 모습이 아니다"(나경원) 등의 글을 올렸다.
마지막 순간 당원의 지지로 되살아난 김 후보는 이날 대선 후보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 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한덕수 전 총리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반발에 가로 막히자 여러분, 저는 호남 사람입니다!라고 세 번을 외쳤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5ㆍ18민주묘지를 찾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시민들에 막혀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 최후의 순간 당심에 발목 잡힌 한덕수…정치 여정 기로에
보수 정치권을 뒤흔들며 '기호 2번'을 굳히는 듯했던 한덕수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는 대권의 꿈을 접게 됐다.
한 후보는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 하루 전인 지난 2일 출마를 선언하며 링에 올랐지만, 출마와 동시에 '용병·꽃가마·부전승' 등의 논란에 휩싸였다.
한 후보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미국발 통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출마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뒤늦은 출발은 결국 최후의 순간 그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도 평가되기도 한다.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한 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할 계획이었으나 정작 입당은 김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이 취소될 때까지 미뤘다.
단일화에 '올인'하고도 김 후보를 설득하지 못했고, 당 지도부에 단일화 작업 일체를 맡기는 행보를 보이다가 후보 교체가 사실상 마무리된 후 입당 원서를 제출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된 '무임 승차' 논란을 자초한 셈이 됐다.
심야 후보 교체 이후 홍준표·한동훈·안철수 등 경선 후보들이 잇달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당내 반발이 분출하자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한 후보는 출마 선언 이후 처음으로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자세를 낮췄지만, 전날까지도 한 후보에게 기운듯했던 당심은 이미 흔들린 뒤였다.
한 후보가 이날 방송 출연에서 당내 반발에 대해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일"로 치부한 점도 안일한 대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한 후보와 함께 개헌연대를 구축할 것으로 보였던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상임고문이 간밤 사태에 실망해 이탈하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독자 행보에 속도를 내면서 한 후보가 김 후보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던 중도 확장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김 후보는 한 후보를 향해 "한 후보님도 끝까지 당에 남아 이번 대선에서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한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김 후보를 도울지는 미지수다.
마지막 순간 당원의 선택을 받지 못한 한 후보는 앞으로의 정치 행로를 두고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찾은 한덕수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가 8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분향하고 있다. 2025.5.8
생각에 잠긴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
한덕수 대선 예비후보가 8일 서울 국회 사랑재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와 후보 단일화 관련 회동을 마치고 생각에 잠겨 있다. 202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