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타깃 된 '약값'…美 vs 韓·日·유럽 제도 어떻게 다르길래
한국은 심평원→건보공단→건정심 통해 신약 등재 여부·가격 결정

유럽·일본 등도 국가 통제로 약값 안정…미국은 사실상 규제 없어

美가 높은 가격 부담해 제약사 연구개발·외국 의료체계 보조한다고 주장

"다른 나라가 제약사에 낮은 약값 강제"…한미 무역협상 쟁점 가능성

제약·바이오업계 "美 약값 인하, 바이오시밀러에 기회"

셀트리온 "유통 구조 개선으로 바이오시밀러 처방 확대 가속"

휴온스 "고가 의약품이 주요 타깃…美 수출 영향 제한적"

작년 바이오시밀러 18품목 허가…역대 최다

작년 의약품 허가·신고 1천197품목…5년째 감소세

희귀의약품 허가 지속 증가…AI 기반 국내 제조 SaMD 개발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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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인의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약사가 다른 나라에서 약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도록 사실상 지원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 같은 내용의 약값 부담 인하 정책을 소개하고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정책의 골자는 비싸기로 악명 높은 미국의 약값을 다른 선진국 소비자가 지불하는 약값과 "평준화"(equalize)한다는 것이다.

제약사가 다른 나라에서 돈을 더 벌면 미국에서는 가격을 낮출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데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쓰지만, 그런 약을 미국에서만 비싸게 팔고 외국에서는 싸게 팔다 보니 미국이 연구개발비를 전적으로 부담해 다른 나라의 약값을 "보조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제약사들은 이익의 3분의 2 이상을 미국에서 내고 있다"면서 "오늘부로 미국은 다른 나라의 의료 서비스를 보조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현재 미국이 다른 나라의 몇 배에 달하는 약값을 내지만 앞으로는 다른 선진국이 지불하는 약값 중 최저 가격을 낼 것이라면서 이를 "최혜국대우(MFN)" 가격이라고 칭했다.

그는 제약사들이 다른 나라와 가격 협상을 하는 것을 돕고, 다른 나라가 협조하지 않으면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그는 특히 유럽연합(EU)을 콕 집어서 "가장 심하다"라고 비판했으며 "미국의 환자들이 독일과 EU 모든 국가의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사실상 보조해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특정하긴 했지만, 미국이 향후 한국과 무역 협상에서도 약값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 제약사들은 자기들이 개발한 '혁신' 신약에 대해 한국이 보험 약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고 수년간 주장해왔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도 올해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제약 및 의료 기기 산업의 경우 한국의 가격 책정 및 변제 정책에 투명성이 부족하고 정부가 제안한 정책 변경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비싸기로 악명 높은 미국 약값을 다른 나라 최저가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공언해온 내용이지만, 당시엔 제약업계의 반발 등으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심지어 미국 제약사의 같은 약인데도 미국 내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싼 것은 약가 결정 체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보다 약값에 있어 국가 통제력이 약하다.

가령 우리나라의 약값 결정 구조를 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약품의 경우 제약사나 약국이 자체적으로 가격을 책정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이라면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제약사가 신약에 대한 급여 적용을 신청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가 등재 여부를 심의한다. 여기서 통과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와 약가 협상을 벌이고 건강보험 정책 최고 심의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그 결과를 최종 심의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가입자가 낸 건강보험료 재정에서 약값이 상당 부분 지급되는 만큼 정부가 가입자를 대표해 협상하는 셈이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정부나 공공기관이 제약사와 협상해 비용효과성 분석 등을 토대로 약값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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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 (PG) [장현경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일본의 경우 후생노동성 산하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가 약가를 결정하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제약사가 의견을 표출하거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순 있지만, 기본적으론 정해진 산식 등에 따라 정부가 정한다.

대체로 한국과 유럽, 일본 모두 약값에 대한 국가 통제력이 크기 때문에 약값을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제약사가 자율적으로 약값을 결정하며, 이 과정에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와 민간 보험사 등이 관여해 약값을 더 올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정부 통제가 거의 안 미쳐 기본적으로 약값이 비싸고, 같은 약도 보험이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 보험이 있어도 어떤 보험사인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미국 정부는 조 바이든 정부 때인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2026년부터 노령층 건강보험 메디케어에 사용되는 일부 고가 의약품에 한해 정부가 약가를 협상할 수 있도록 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는 약값이 비싼 편이다.

가령 미국 정부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낮춘 항응고제 엘리퀴스의 경우 현재 60정 기준 606달러(약 85만8천원)에서 내년부터 295달러로 인하될 예정인데 이미 스웨덴에선 114달러, 일본에선 20달러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엘리퀴스 1정당 745원으로, 건강보험 본인부담률 30%가 적용된다고 하면 환자는 1만3천원가량에 60정을 살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자국 내 의약품 가격을 대폭 낮추게 하는 대신 다른 나라들을 관세 등으로 압박해 자국 제약사가 다른 나라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협상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도 제약회사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이고, 미국 정부가 자국 약값 인하를 강제할 수단이나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방식 등 모호한 부분이 많아 실제 실현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바이오 시밀러 소개.

바이오 시밀러 의약품은 정품과 전적으로 똑같지는 않으나 쌍둥이처럼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처방약 가격 인하 정책이 국내 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가 의약품이 이번 행정명령 주요 타깃이어서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유통 구조가 개선되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판매되는 처방약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가 지불하는 가격의 3배 이상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30일 내 새로운 약값을 책정하라고 미국 보건부에 요구했다. 가격 인하가 실행되지 않으면 정부가 지불하는 금액을 제한하겠다는 계획이다.

셀트리온[068270]은 이에 대해 "고가 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와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등 중간 유통 구조 개선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사는 "현재 미국 보험사 및 PBM 시스템은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이 처방집에 우선 등재된 이후 바이오시밀러 간 제한된 경쟁을 통해 2∼3개 제품이 추가 등재되는 구조"라며 "중간 유통사 리베이트 문제로 인해 바이오시밀러 가격이 병원 처방 시 오리지널 수준으로 높게 형성돼 환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유럽에 비해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확대 폭이 미비했다고 셀트리온은 전했다.

셀트리온은 "이번에 발표된 행정명령을 통해 중간 유통 구조가 개선되면 바이오시밀러의 실제 처방 가격이 인하돼 정부 및 환자가 얻게 될 혜택이 분명하다"며 "유럽과 유사한 수준으로 바이오시밀러 처방 확대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PBM 등 중간 유통 구조 개선이 국내 기업의 현지 영업 활동에 긍정적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셀트리온은 "오리지널 제품 기반의 고수익 제약사가 중간 유통 구조와 구축한 유통 지배력은 약화할 것"이라며 "이는 경쟁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시밀러 기업에 시장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바이오시밀러 제조사가 PBM 등 중간 유통사가 아닌 정부와 직접 약가를 협상할 수 있어 정부와 제조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기회가 나올 것"이라고 부연했다.

휴온스도 트럼프 정부의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미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휴온스는 생리식염주사제, 리도카인염주사제 등 총 7종의 미국식품의약품청(FDA) 품목허가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휴온스 관계자는 "이번 행정명령 핵심은 PBM 구조 개선 및 약가 인하"라며 "약가 격차가 크고 많은 지출을 일으키는 고가 의약품의 가격 인하가 주 타깃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리도카인 등 국소마취제 품목군은 고가약 등에 비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판매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자사 주력 수출 품목인 국소마취제 영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의약품 시장에 대한 미국발 관세 리스크는 여전한 상황이다.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과의 고위급 협상에서 '관세전쟁'을 9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하면서도 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는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주에는 의약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2주 내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우리 정부는 국내 의약품이나 서비스가 미국 국민의 약가 인하에 일조하며 결코 위협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며 "협회에서도 우리나라가 협력 가능국이며 양국 국민 건강을 위한 약가 인하 정책의 파트너라는 입장을 내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의견을 미국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며 "이후 대응을 잘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라고 전했다.

Software as a Medical Device (SaMD) 허가·인증·신고 현황 그래프.

다만 SaMD의 허가·인증·신고 건수가 증가하는 사실이 판매량, 효과·효능, 만족도 등 각 다른 변인 항목의 사회적·치료의학적 결과치에 대한 (관계)유의미도를 의미하거나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작년 국내에서 바이오시밀러(동등생물의약품) 허가 건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내용을 포함해 작년 의약품, 의약외품, 의료기기의 허가·인증·신고 등 현황을 담은 허가보고서를 29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의약품은 총 1천197품목이 허가·신고됐다. 전년 1천349품목보다 152품목(11.3%) 줄어들며 5년째 감소세를 지속했다.

의약품 가운데 동등생물의약품은 전년보다 6품목 늘어난 18품목(10개 성분)으로, 2012년 첫 품목허가가 이뤄진 이래 가장 많이 허가됐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3품목(7개 성분)이 국내 개발 품목이었다. 작년까지 허가된 총 72품목(35개 성분) 중 약 72%인 52품목(24개 성분)이 국내 개발 품목이었다.

식약처는 특허 만료를 앞둔 원개발사의 품목이 다수 있어 국내 기업의 동등생물의약품 개발이 활발히 지속될 것으로 기대했다.

제네릭(복제약) 의약품 등 허가·신고 품목 수는 전년 대비 43품목 증가한 845품목이었다.

식약처는 2021년 7월 동일한 임상시험 자료를 다른 품목에 사용할 수 있는 횟수를 3회로 제한한 후 최근 3년간 유사한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제네릭 의약품 등 허가·신고 품목 수는 2020년 2천813품목에서 2021년 1천614품목으로 줄었고 2022년 이후로는 800품목 대를 유지하고 있다.

희귀의약품은 지난해보다 2품목이 증가한 총 39품목(26개 성분)이 허가됐다. 이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등 항악성종양제가 16품목으로 가장 많았다.

작년에는 은행엽건조엑스 등을 주성분으로 하는 순환계용약이 총 161품목으로 가장 많이 허가됐다. 해열·진통·소염제(146품목)와 당뇨병용제(127품목), 기타 비타민제(99품목), 항악성종양제(39품목)가 뒤를 이었다.

의약외품은 총 659품목이 허가·신고됐다. 국내 제조 품목의 허가·신고 수가 567건으로 전체 허가·신고 건수(659건)의 86%를 차지하며 우세 경향을 유지했다.

의약외품 품목군별로는 생리대가 41.1%(271품목)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치약제, 반창고가 각각 19.3%, 10.5% 순으로 허가·신고됐다.

의료기기는 모두 7천116품목이 허가·인증·신고됐다.

이중 독립형 의료기기 소프트웨어(SaMD) 제품의 허가·인증·신고는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하며 작년 164건을 기록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다양한 진료 분야에서 국내 최초 허가 제품이 두드러졌다. 작년까지 허가된 혁신의료기기 41품목 중 33품목(80.5%)이 SaMD였다.

국내외에서 피부 미용·성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조직 수복, 주름 개선 등 피부 관련 의료기기도 꾸준히 허가되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치아 상실 및 관련 질환 유병률이 증가하면서 작년 허가·인증·신고 다빈도 상위 품목에 '치과용임플란트상부구조물'(135건·3위), '치과용임플란트시술기구'(98건·6위)가 포함됐다. 1위와 2위는 압박용밴드(424건)와 부목(168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