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 국내 첫 실태 분석…독성 변이 국내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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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해외에서 급증하며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A군 연쇄상구균' 감염에 대한 공포가 국내에도 엄습하고 있다.

피부 감염부터 치명적인 독성쇼크증후군까지 유발하는 이 세균은 심지어 기존보다 독성이 강한 변이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국가 차원의 감시체계가 없어 정확한 발생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깜깜이 방역' 상태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다행히 정부가 뒤늦게나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당 감염증을 법정감염병으로 지정,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 국내 '숨은 감염' 충격 실태… 7명 중 1명 사망, 독성 변이도 출현

3일 의료계에 따르면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이현주 교수 연구팀이 질병관리청의 의뢰로 수행한 '국내 침습성 A군 연쇄상구균 감시체계 구축' 연구 결과는 국내 상황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연구팀이 최근 10년(2015~2024년)간 공식 감시체계 없이 확인한 국내 침습성 A군 연쇄상구균 감염 사례는 총 383건에 달했다. 이는 의료기관의 자발적 신고나 제한된 자료를 통해 집계된 수치로, 실제 감염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염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체 환자의 83.3%(319건)가 성인이었으며, 16.7%(64건)는 소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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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41.5%(159건)는 감염으로 인해 수술이나 피부 절개술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1.3%(5건)는 팔다리를 절단하는 비극을 겪었다. 또한, 환자 10명 중 3명꼴(27.2%)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높은 사망률과 후유 장애 발생률이다. 전체 환자의 14.4%가 이 감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11.7%는 평생 안고 가야 할 심각한 후유 장애를 겪게 됐다. 감염자 약 7명 중 1명이 사망하고, 10명 중 1명 이상이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해외에서 독성이 훨씬 강한 것으로 보고된 'M1UK' 변이 A군 연쇄상구균이 국내에서도 2020년과 2023년에 각각 1건씩, 총 2건 확인됐다. 이 변이 균주는 기존 균주보다 훨씬 빠르고 심각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어 전 세계 보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 선진국은 '철통 방어', 한국은 '무방비'…'깜깜이 방역' 언제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침습 A군 연쇄상구균 감염에 대한 국가 차원의 감시체계를 운영하며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모든 환자를 빠짐없이 등록·관리하는 '전수 감시체계'를 통해 감염병의 확산 양상과 유행 변이 등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련 감시체계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로 말미암아 국내 환자 발생 규모나 역학적 특성, 위험 요인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유행 발생 시 조기 인지 및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지적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감염병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4%가 A군 연쇄상구균 감염으로 발생하는 성홍열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방역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침습 A군 연쇄상구균 감염과 독성쇼크증후군에 대해서는 각각 70.7%가 전수감시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며, 실험실 감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 뒤늦게나마 칼 빼든 정부… 법정감염병 지정으로 '조용한 살인자' 막는다

다행히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섰다.

질병관리청 감염병관리과 박영준 과장은 "이번 연구는 선진국에서 침습성 A군 연쇄상구균 감염증 발생이 증가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국내 현황 파악과 함께 감시체계 구축 타당성 및 필요성을 검토하기 위해 질병관리청에서 발주한 것"이라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질환을 법정감염병에 반영하는 것에 대한 세부 사항을 검토,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되면 의료기관은 환자 발생 시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이를 통해 전국적인 발생 현황과 역학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방역 및 관리 대책 수립이 가능해져 감염 확산 방지와 환자 조기 발견 및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국내 현실에 맞는 침습 A군 연쇄상구균 감염 감시체계 모델도 제안했다. 여기에는 소아 감염, 감염내과, 진단검사의학과, 예방의학과 전문가로 구성된 네트워크 구축, 전국 다기관 감시체계 운영, 표준화된 증례 기록지 및 역학조사서 개발 등이 포함된다.

연구 책임자인 이현주 교수는 "침습 A군 연쇄상구균 감염은 높은 사망률과 심각한 후유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질병이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못했다"며 "체계적인 국가 감시 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해 국내 역학적 변화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고위험군 관리 및 유행 조기 발견을 통해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드문 병' 아닌 '일상 속 위협'…의심 증상 시 즉각 진료받아야

전문가들은 독성이 강한 변이 균주의 국내 출현까지 확인된 만큼, 더 이상 침습 A군 연쇄상구균 감염을 '드문 질병'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한다. 이 세균은 주로 인후염의 원인이 되지만, 혈액이나 근육 등 비정상적인 부위에 침투할 경우 패혈증, 괴사성 근막염(살을 파먹는 병으로도 불림), 독성쇼크증후군 등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의 각별한 주의도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고열, 오한, 심한 인후통, 전신 근육통, 피부 발진, 상처 부위의 심한 통증이나 부기, 전신 무력감 등의 의심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