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아래의 문화전통과 그 조화 : 전 세계가 CMG의 2025년 중추절 갈라 축제에 초대를 받다.
Heritage and Harmony Beneath the Full Moon :The World Is Invited to the CMG 2025 Mid-Autumn Festival Gal
[보도자료]
보름달 아래 펼쳐지는 전통 문화와 조화
중국중앙방송 2025년 중추절 축제 행사에 전 세계 초대
베이징 2025년 10월 3일 중국중앙방송(China Media Group: CMG)이 중국 남서부 더양에서 열리는 올해 중추절 축제 행사에 세계인을 초대한다. 더양은 고대 전통과 미래 지향적인 첨단 기술이 융합된 도시이다.
쓰촨성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펼쳐지는 축제 행사에서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이 모이는 중추절의 특징을 살려 흘러간 노래와 최신곡이 어우러지는 무대도 마련된다.
제2차 중일전쟁(Chinese People's War of Resistance Against Japanese Aggression)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World Anti-Fascist War) 80주년을 기념해 향수를 자극하는 명곡 'Flowers of May(5월의 꽃)', 'As Time Goes By(세월이 지나)', 'La Vie en Rose(장밋빛 인생)'을 무대에 올려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인류의 보편적 감성을 강조하고 되새긴다.
음악이 만국 공통어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그래미상 수상 밴드 타임 포 쓰리(Time for Three)와 중국 가수 지커쥔이(jike junyi)의 합동 공연으로 '달이 나의 마음을 대신하네요(The Moon Represents My Heart)'와 벤 E. 킹이 불렀던 'Stand by Me (내 편에 서 있어 줘)'의 절묘한 만남이 성사된다.
현대 제조 산업의 중심지이자 고대 촉나라와 신비로운 '샨싱두이(三星堆) 유적지'로 이어지는 관문인 더양(德阳)은 전통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수준을 넘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고장이다.
이러한 조화를 되새기고자 기획된 특별 행사에서는 로봇의 안내를 받아 유물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으로 삼성퇴 박물관을 견학하면서 중국의 첨단 제조 기술과 고대 문명이 소통하는 모습을 연출할 예정이다.
2025년 CMG(중국중앙방송총국) 중추절 축제 행사는 10월 6일 오후 8시(베이징 시각)부터 전 세계에 방영된다.
▷ 아래 글은 본 지의 필자가 소개하는 샨싱두이에 관한 간략한 기록이다.
청동으로 된 사람머리상. 높이 29㎝ 폭 20.6㎝ 무게 4.483㎏이다. 처음 삼성퇴 유적에서 이런 청동머리상이 확인되자 발굴단원들이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사진 : 샨싱두이 박물관)
샨싱두이(三星堆)는 양쯔강(揚子江) 중류인 쓰촨성(四川省) 광한시(廣漢市)에서 서북쪽인 야쓰허(鴨子河)와 마무허(馬牧河) 등의 두 강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유적지명으로, 중국인들에게 황허문명의 중원과도 떨어진 곳에 원숭이도 피해가는 오랑캐들의 지역으로 잘못 알려져 왔던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 유물들이다.
중국인들이 현재 그들의 중원 황허문명의 국가 기원으로 주장하고 있는 하나라(기원전 2070~1600년), 상나라(기원전 1600~1046년), 주나라(1046~252) 등이 차례로 문명과 유사한 연대의 문명사회 전개지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학계는 황허의 중류에서 이른바 양사오문화(仰韶文化·기원전 5000~기원전 3000년)를 중국문명의 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그들의 중원 황허문명의 국가 기원으로 하나라(기원전 2070~1600년), 상나라(기원전 1600~1046년), 주나라(1046~252) 등이 차례로 세워졌다는 주장이다.
현재도 중국인들은 그 외의 지역에 대하여는 그저 사이(四夷)라고 해서, 사방 4곳의 오랑캐 땅이라고 치부한다. 중원의 동쪽 동이(東夷·활 잘쏘는 동쪽사람), 서융(西戎·창쓰는 서쪽 사람들), 남만(南蠻·벌레가 많은 남쪽), 북적(北狄·이리가 많은 북쪽)으로 낮춰 부른다.
(하나라의 걸왕을 물리친 성탕(成湯)이 건국한 것으로 되어 있는 성탕은 갑골문에서도 확인되는 왕으로 대을(大乙), 성당(成唐)으로 언급된다. 다만 그 또한 초대는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역학의 시조 태호복희씨 등 신화의 시조 삼황오제 등을 포함, 사실상 중원지역에 최초의 국가를 세운 것도 현재 중국인이 부르는 일명 동이족인 것은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물론 동이로 낮춰 부르는 만리장성 이북에서도 최소 기원전 6000년 더 이전 유적인 차하이(査海)에서 용 형상의 돌무더기가 확인됐으며, 이어 훙산문화(紅山文化ㆍ기원전 4500~기원전 3000년 경 추정)의 유적과 유물들도 발굴되었다.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시(朝陽市) 뉴허량(牛河梁)과 둥산쭈이(東山嘴)에서는 무덤과 제단, 신전(여신묘) 등 명백히 고대 사회를 형성하는 유구와 유물들도 대거 확인되었다.
또, 남만(南蠻)의 소굴로 치부했던 장강(양쯔강·揚子江) 유역에서는 이른바 량주(양저·良渚ㆍ기원전 3200~기원전 2200년) 문화로 불리는 찬란한 옥기와, 흙으로 쌓은 엄청난 규모의 고분군, 그리고 궁전터와 제사유적 등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후 삼국지의 지리멸렬한 끝도 없을 듯한 전쟁이 이어지며 결국 위, 촉, 오 삼국이 들어서게 되는 지역으로, 앞 서는 중화국민들이 틀림없다고 믿었던, 더더우기 원숭이도 피해 갔을 오랑캐들의 땅으로 알았던 곳에서 최소 그들의 하,상나라 국가시대 주장 연대와 비슷한 시기의 청동유물들이 발굴된 곳이 샨싱두이 유적인 것.
(참고로, 현재 -어디까지나-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상나라는 이미 청동기 중기 문물 국가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다양하고도 엄청난 규모의 청동유물들은, 중국 중원은 물론 그외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독특하다. 높이가 2m62㎝에 달하는 청동입상, 폭이 1m38㎝에 이르는 청동가면, 높이가 최고 3m95㎝가 되는 청동신수(神樹) 등은, 실상 당시 이 지역에 정착하고 있던 무리 사회의 일명 그 '사이즈'에 대하여 좀 더 다른 가설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특히 2호 구덩이에서 찾아낸 대형청동상(높이 2m62㎝)은 무게가 180㎏이나 되며, 과장될 만큼 양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같은 2호 구덩이의 청동상의 소(小)인상들의 경우 옷깃이 겹쳐지지 않은 웃옷을 입거나, 무릎을 꿇거나 하는 모습이며, 이는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만한 모습들이다.
그 외에도 다량의 옥기와 석기 등이 발굴되었으며, 위 사진의 것을 포함한 사람얼굴 형상의 청동인두상도 57점이나 나왔다.
청동인두상은 그 형태들도 매우 다양하여, 정수리가 평평하고 머리카락을 뒤로 땋은 것, 평평한 머리에 모자를 썼거나 화(回)자 무늬의 관을 쓴 것, 꽈배기(최레크, 추레키, 체인) 양식의 변발을 머리 뒤에 둘둘 감거나 머리 뒤로 나비모양의 비녀를 꽂은 것, 양쪽에 뿔이 달린 투구를 쓴 것 등등이 발굴되었다.
무엇보다 귀를 포함 가로 37cm의 황금 가면 외에도, 길이가 1m43㎝ 무게가 463g의 금으로 된 거대한 봉, 황금 지팡이 또한 발굴된 곳이다.
샨싱두이에서 발굴된 (두 눈에 말뚝이 박혀 있는) 청동가면상.
길이 무려 1m38, 폭 85㎝, 높이 66㎝ 무게 71.1㎏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이다.
샨싱두이 유적지의 청동신수청동 신수(神樹). 높이가 약 4m에 이른다.신수는 현재도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나무 사다리로 인식되고 있다.
샨싱두이 유적지의 청동 입상(立像, 서 있는 사람들).
전신의 인물상으로, 옷자락에 4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높이가 2m60cm가 넘는다. 용은 황제나 임금을 상징하는 신령한 동물로, 현재 중국말의 발성으로는 "롱"으로 남아 있다.
독특한 헤어 스타일과 그 위에 높은 세 개의 (포ㅋ, 챠탈(?), 꾸퍼, 쓰랑 모양; 꽈드, 땋, 체인 최레키 전의) 높은 샨싱(三星)의 관을 쓴 청동인물상.
귀 포함 가로 약 37.2cm의 황금가면을 쓴 인두상.
필자 류임현의 관련 이론들에 대한 상세한 글은 생략해 두겠으나, 먼저 샨싱두이 청동문물 사회의 그 상위 계급층은 매우 사이즈가 컸을 것으로도 추정 가능하다. 최소한 이들은 대체로 거대한 신(단)수와도 같이 자신들을 '롱', 즉 용과도 연계하는 서사가 있었을 것으로도 추정 가능하다.
이후 그 지역 일대로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정식 국호는 ‘한(漢)’이었고, 지명인 촉(蜀)을 따서 ‘촉나라’로 불렸다는 역사의 대목도 기재해 둔다. 그 수도는 성도(成都)였으며, 한 황실의 후예가 세운 마지막 한나라였다. ‘계한(季漢)’ 혹은 '촉한(蜀漢)'으로도 불린다.
다만 중원의 남동쪽 상해나 북경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곳이다. 조조가 세운 위(魏)나라에 멸망했으며, 촉한의 지도층들의 행방에 대하여도 몇 가지의 가설이 가능하다. (이후 위는 진에게 멸망했다.)
일명 사천 요리로도 유명한 사천, 즉 쓰촨의 경우 현재 티베트 자치구와 붙어있고 서쪽 간쯔, 아바 일대까지는 원래 티베트의 영역이었다. 히말라야산맥으로 이어지는 고산지대가 연속되어 있는 곳이다.
참고 대조)
상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알려진 청동인상.
상나라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으로 알려진 청동 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