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왜곡되는 향방

부침의 연원은 소통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물으며.

류임현 기자 승인 2023.08.17 15:54 | 최종 수정 2023.08.17 16:16 의견 0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요인 귀국기념 사진. 1줄 왼쪽: 장건상. 조완구. 이시영. 김구. 김규식. 조소앙. 신익희. 조성환 / 2줄 왼쪽: 류진동. 황학수. 성주식. 김성숙. 김상덕. 유림. 조경한. 김붕준. 류동열. 김원봉. 최동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측은 앞서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권고 했고, 한국의 신청에 따라 2023년 5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집행이사회에서 최종 승인을 했다.

실상 4년 전 최동오 선생(사진)의 직계 최덕신의 아들 최인국은 북한에서 영주를 위하여 월북한 것으로 최종 확인 가능하다. 그가 결심을 굳히게 된 사유에는 앞 서 2년 전 모친 류미영 (단군민족통일협회 회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 위원장, 조선천도교청우당 위원장 등 역임.) 선생이 세상을 달리한 이유도 없지 않겠으나, 그의 월북 또한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굴곡만큼 그리 간단한 사연만은 아니다.

믜디일보는 연구 pic의 한 주제로 한국 광복군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무관하지 않은 관련 사건들과 시사점들에 대한 고찰을 예정하고 있으나, 먼저 1945년 8월 15일 일본군의 항복과 대한 독립 이후로 줄곧 왜곡되어 온 그 존위와 향방에 대한 문제점의 제기 및, 그 부침의 연원은 소통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기해 두려는 것이다.

고종 임금 아래 임오군란의 발발로 흥선대원군이 복위하게 되었고 구식 군대의 군란을 진압한 청나라의 외교적 영향력 또한 강화되었으나, 머지 않아 대한제국은 결국 을사늑약 및 군대해산의 수순을 겪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군대를 대한제국의 군대로 보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오히려 이미 인구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3대 파벌로 광복군, 만(주)군, 일본군이라는 수식과 셈본들이 회자되었으며 이미 모 교과서에도 게재 되었다는 소문까지도 파다하였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의 우리들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주석 김구 선생의 암살 사망 이후, 주석 이승만 선생의 대통령 당선 이후로는 더더욱 기억에서 원천봉쇄 되었다.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환영대회. (화면 오른쪽 끝이 류동열,
좌측은 최동오, 맨 끝 좌측은 김규식과 김구)


1946년 조병옥의 추천으로 미 군정청의 통위부장에 임명되었으나 처음에는 군정 참여에 부정적이던 류동열 선생이 결국 알려진 바 신생 조국의 군대는 광복군의 법통을 계승해야 된다는 이응준 등의 거듭된 방문과 전화설득 끝에 취임을 수락, 이범석, 이(지)청천, 원용덕, 손원일 등과 함께 조선국방경비대의 창설에 관여하였고, 그 조선국방경비대는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모태가 된다.

그러나, 류동열 선생이 1946년 2월 14일 비상국민회의 국방위원장으로 선출되고, 1949년 8월 20일 민족진영강화위원회 상무위원에 선출되는 과정에서, 국방경비대와 경찰 간의 체포 관련 분쟁이 발생하고 조병옥과도 갈등을 겪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군대는 그 내부의 파벌 간 갈등과도 같이, 이후 공산화 되는 소련의 크레믈린과 죽의 장막 중화인민공화국과는 전혀 또 다른 왜곡되는 향방의 그 내부의 실상과 외부의 선전 선동의 실체와 진실을 가늠하기 힘든 전개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류동열 선생이 조선 양반가문의 출신이 아닌 사병의 고위장교 임용을 반대하는 주역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미군정의 증언은 당시 당황을 주장한 미군정보다, 한국 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당황은, 김구 선생의 암살과 이승만 선생의 당선보다 더 놀라운 사실들도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안개 속에 서 있는 나무들과 같은 기억의 편린들로 작용하며 왜곡되는 향방으로 더더욱 "인식" 당한 "국민"들의 기억들을 지배하게 되는 모든 단면적인 작용들과 그 팩트의 사실관계들은 결코 팩트 아닌 팩트에 지나지 않는다.

더우기 1950년 한국 전쟁의 발발로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과 이북의 정치일꾼들의 이른바 '모시기 공작' 아래 수 많은 인사들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납북 혹은 월북된 이후, 대한민국은 그래 물린 장막의 또한 오리무중 가운데 숫제 향방을 잃어버리고 좌초하는 범선처럼 역사라는 급물살을 이유로 삼으며 돗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떠밀려 내려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또 일 년의 광복절 기념일을 지나며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군대의 향방에 대하여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류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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