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정치·문화의 중심지…고령(高靈), 5번째 '고도'로

류임현 기자 승인 2024.07.05 21:29 의견 0

국가유산청, 경주·부여·공주·익산 이어 20년 만에 새 고도 지정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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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군의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5∼6세기 가야 북부 지역을 통합하면서 성장한 대가야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북 고령군이 고도(古都)가 된다.

국가유산청은 3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고도보존육성중앙심의위원회 회의에서 고령군을 새로운 고도로 지정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고도는 과거 우리 민족의 정치·문화의 중심지로서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 지역을 뜻한다.

2004년 3월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현재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경주와 부여, 공주, 익산 등 4곳이 고도로 지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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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시가지와 주산성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새로운 고도 지정은 약 20년 만으로, 고령은 5번째 고도가 된다.

고도로 지정되면 지역 내 주거 환경이나 가로 경관을 개선하는 사업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주요 유적을 활용한 역사문화공간조성 사업 등도 추진할 수 있다.

고령 일대는 예부터 대가야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다.

고령에서는 대가야의 궁궐이 있었으리라 추정되는 궁성 터를 비롯해 왕궁을 방어하던 산성, 수로 교통 유적, 토기 가마 흔적 등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수백 기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연맹의 중심 세력으로서 대가야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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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경 [국가유산청 제공]

1978년 지산동 32호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관(정식 명칭은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의 경우, 5∼6세기 대가야의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로,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고분 구조나 출토된 유물 등이 신라와 차별화된 특성을 보인다"며 "'대가야식', '고령식'으로 불리는 유물들은 독창적 가치를 지녀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고도보존육성중앙심의위원회 측은 주요 유산을 둘러싼 역사 문화환경이 잘 관리돼 있고, 고도 지정에 대한 지역 주민의 공감대가 큰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다.

국가유산청은 '고도육성법' 시행령을 개정해 고도 지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국가유산청은 "고령군 일대의 유·무형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관리·육성하고 지역 주민과 동반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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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국가유산청 제공]

현재 고령이 도자기의 주재료가 되는 고령토와 직접적 상관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단언은 힘들다. 오히려 희황조 이후 고리 고조선 신족들이 흰 머리 백두와 신단수를 신령한 산으로 트기에 이르는 과정의 높을 고(高)와의 연계 관계를 따져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고을, 골 이후 고구려, 고려 등 국명이 전부 고(高)인 것이 구석기 토기 및 신석기 빗살무늬 토기를 이은 각종 토기들 이후 특히 고령석, 고령토 (高嶺石, 高嶺土 각 현재의 한자음)을 활용하여 청자, 백자 등 자기를 빚는 도공들의 기술이 더 고도화하는 과정보다 더 뒤로 보기도 힘들다.

한반도에서는 도자기의 소재가 고령석으로서 보다 고령토의 형태도 더 많이 산출되는데 밀양, 양산, 김해, 창원, 통영, 산청, 포항, 경주, 해남, 진도, 충북 영동 등에서도 산출된다.

그런데 현재 kaolin, kaolinite로 불리는 이 고령석은 중국의 유명한 점토 산지인 장시성 징더전의 가오링(高嶺, Gaoling)에서 처음 백색 점토가 발견되었다고 잘못 알려지며 이 지역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러나, 본 지 (기자) 필자의 연구가 밝혔듯 인류 문명언어의 기원과 어원으로서의 그 폭발적 전개를 이룬 지역은 부산, 경남(북)의 일대로 대체로 경상도 사투리로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까올린, 카올린 등 에스빠뇰어 등으로 전래된 발음은 물론 '캐올린'의 영어 발음도 그 예의 한 가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토기, 자기, 도자기를 만드는 흙, 점토는 대체로 까거나 캤다는 말로 여전히 남았다고 보는 것이 더 일치된다고 볼 수 있으며, 까오나 가오 등 높을 高자의 말로 통용 혹은 변이된 중국어의 발음 또한 한반도 말에서 전래한 것으로 중국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에스빠뇰어의 떨어지다, 쓰러지다, 죽다, 등으로 쓰이는 caer [까에r]의 인칭 변형이 [까이고], [까에스], [까에] ,

파다, 파 엎다, 수확하다, 깊이 들어가다 등으로 쓰이는 cavar [까바r]의 인칭 변형이 [까보], [까바스], [까바]이며, 등으로 쓰이고 있는 것등도 그런 사실을 뒷 받침한다.

파다, 굴착하다, 구멍을 뜷다, 발굴하다 ex-cavar.


사실상 토기, 진흙, 흙탕물 등은 '바라(바르게 하라)' '바르다'의 같은 어원으로 추정 가능한 barro이다.

bardar [바르다r]는 짚 등으로 지붕을 (발라) 이어 붙여 덮다.

bañar [바(르)냐] 는 도금하다, 바르다.은떼다 등과 비슷한 untar [운따r]는 1. (기름이나 기름진 것을) 바르다. 2. 매수하다, 끌어들이다 등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 도자기의 경우 현재 중국에 의해 약 기원전 1600년경으로 주장되는 구성된 상상적 혹은 상징적 역사시대로서의 은(殷) 혹은 상(商) 이어 주(周) 나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대가 바로 복희 갑을의 황제 시대로서의 희씨들이 중원의 중국 대륙 인근까지 동진하여 황국을 이루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소 힘들고 더딘며 전파가 힘든 말의 표기들보다는 소통의 도구로 더 풍요하고 직접적인 말로서 폭발적인 전개를 이룬 한반도 남부의 언어종족과 대륙의 중원에서 좀 더 동진한 희씨의 황족이 본격적으로 그 트기를 이룬 것은 한참 더 훗날의 일이며, 만약 중국이 뻬이징 원인의 자손으로서가 아닌 희씨 황족의 후예로서 그 역사 시대를 논한다면 그 역사 시대는 상나라 보다도, 더 앞 서 고조선의 고리 국가보다도 더 희씨 황조까지로 훨씬 더 상대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고령토 '캐올린'에 대하여 또한 엎어치나 메치나 한 계산이 된다.

한반도 남부권에서 문명의 언어종족을 폭발적으로 이룬 그들을 이끈 트기의 지도자 혹은 지배자들 또한 실상 더 앞 서 일찍이 남하한 "흰" 사람들 신족의 한 일족으로서 가이야까지도 잇게 되는 싸울스로서의 트기 종족들이었다는 가정도 빼놓지 않고 기재해 둘 만 할 것이다.

구석기 시대로 이어진 다소 다양한 인류의 종족들에게 있어 그야말로 한반도의 토착 종족이라는 주장은 '뻬이징 원인'이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주장만큼 의미가 없으며, 남하한 희ㄴ 그들과 이미 토착해 있던 좀 더 다양하거나 다른 그들이 그곳에서 맞닥뜨리며 각 개의 집단을 이루던 그 과정에는 각종의 피치 못했을 수 있는 이유들이 있었던 것일 뿐이다.

그 곳에서 현재 인류 문명 언어의 기원과 어원이 폭발적으로 전개되었고 글로벌 전체로 전파되게 된 것이 '팩트(fact)'인 것이다.

여담으로, 문명 언어종족으로서 더 폭발적 전개를 이룬 말의 언어종족은 대체로 모계 계승 종족에 더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류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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