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인도 돌며 아시아권 동맹 구축 나서

韓 반도체·IT 리더들과 잇달아 면담하고 카카오와 제휴…정부는 '패싱'

카카오·오픈AI 제휴 파트너십 발표…정신아 "국내 AI 서비스 대중화에 가교"

SK그룹 회장 회동뒤 오픈AI HBM 공급·AI 데이터센터 건설 등 전방위 협력 논의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3자회동

..."스타게이트에 기여할 한국 기업 많다"

부상중 인도 방문 예정

"폐쇄형 AI와 오픈소스 AI 간 '글로벌 표준 전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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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인사하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4일 오전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미디어데이에 참석하기 전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갖고 손 인사를 하고 있다. 2025.2.4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딥시크(Deepseek)를 위시한 중국산 인공지능(AI)의 맹추격 속 4일 한국을 찾아 주도권 다지기에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AI 개발을 주도해온 오픈AI가 적극적으로 국내 유수 기업의 수장들을 만나 협력을 논의하면서 한국도 글로벌 AI 패권 경쟁의 핵심 전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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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 마친 최태원 회장과 샘 올트먼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회동을 마친 뒤 함께 이동하고 있다. 2025.2.4

◇ 반도체·플랫폼·게임 '종횡무진'…AI 패권 경쟁서 '우군 만들기'

올트먼 CEO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을 찾아 20∼30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며 수많은 국내 산업계 리더들을 만났다.

첫 공식 일정인 개발자 대상 워크숍 '빌더 랩' 강연을 시작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유영상 SK텔레콤[017670] 대표이사 사장·곽노정 SK하이닉스[000660] 대표이사 사장·김주선 SK하이닉스 AI인프라 사장 등 SK 경영진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국내 게임사 중 시가총액 1위이자 AI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크래프톤[259960]의 김창한 대표도 면담했고, 카카오[035720]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정신아 대표와 함께 파트너십 방안을 발표했다.

오후에는 서초동으로 자리를 옮겨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과 3자 회동을 갖고 AI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3자 회동'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사진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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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대담하는 오픈AI 샘 올트먼 CEO (서울=연합뉴스)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카카오와의 전략적 제휴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대담하고 있다. 2025.2.4

챗GPT 개발사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4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난 뒤 "원더풀(굉장했다)"이라고 말했다.

올트먼 CEO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오픈AI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비공개 워크숍 '빌더 랩' 행사 직후 최 회장과 40분가량 면담한 뒤 '오늘 미팅 소감'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최 회장에 대해선 "나이스 가이(좋은 사람)"라고 덧붙였다.

이날 면담에는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김주선 SK하이닉스 AI인프라 사장 등도 동석했다.

최 회장과 올트먼 CEO는 이날 인공지능(AI) 반도체와 AI 생태계 확대를 비롯한 오픈 AI와 SK그룹의 전방위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과 SK텔레콤의 AI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올트먼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을 대신하는 AI 전용 단말기와 독자 반도체 개발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방한한 올트먼과 만난 데 이어 같은 해 6월 미국 출장 당시 샌프란시스코 오픈AI 본사에서 또다시 만나 급변하는 AI 기술, AI 산업의 미래 등에 의견을 나눴다.

한편 삼성전자측은 '3자 회동'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며, 오픈AI 행사가 열리는 더플라자 호텔을 직접 찾아 올트먼 CEO와 나란히 '투샷'을 과시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검찰의 대법원 상고 가능성이 남은 데다 실적도 부진한 만큼 대외 행보를 과시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며 "당분간 조용하게 움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실상 해외 정상의 순방을 방불케 하는 올트먼 CEO의 이런 '광폭 행보'는 글로벌 시장에서 격화되고 있는 AI 패권 경쟁과도 무관치 않다.

지난해 7월 삼성전자 회장이 아시아 최고 갑부 무케시 암바니 인도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의 막내아들 아난트 암바니의 결혼식에 참석하며 글로벌 인맥을 과시하기도 했다면, 힌두스탄타임스(HT)등 인도 매체들은 4일 올트먼 CEO가 일본에 이어 한국을 방문 뒤 5일(현지시간) 인도를 찾는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소식통들은 올트먼 CEO가 인도 방문 기간에 수도 뉴델리에서 정부 고위 관리와 정보통신(IT)업계 관계자, 투자자 등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자세한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인도는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저비용 인공지능(AI) 모델 공개로 세계 AI 산업에 파장이 이는 가운데 인도 올라그룹이 계열사인 AI 스타트업 크루트림에 3천억여원을 투자, AI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어 양측 모두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5일(현지시간) 비즈니스 스탠더드 등 인도 매체들은 올라그룹 창업자인 바비시 아가르왈은 전날 크루트림에 200억루피(약 3천3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크루트림의 AI 개발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인도를 위한 AI를 개발중이라는 아가르왈 창업자는 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으로 인도 최초의 GB200 시스템을 개발했다면서 이 슈퍼컴퓨터 시스템은 다음 달쯤 작동될 것이라고도 덧붙인 상태다.

2023년 4월 설립된 크루트림은 인도 최초의 AI 유니콘으로 현재 대형언어모델(LLM)을 구축 중이다.

샘 올트만 오픈AI CEO


오픈AI의 미국 내 최대 경쟁자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대형언어모델(LLM)뿐만 아니라 기기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언어모델(SLM)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지난달 말에는 중국의 신생 기업 딥시크(Deepseek)가 오픈AI에 비해 현저히 적은 비용과 인력을 가지고 AI 모델 '딥시크 V3'를 만들어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서 폐쇄형 AI로 수익을 내온 오픈AI의 입지를 뒤흔들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픈AI가 일본에 이은 다음 순방지로 한국을 선택, 반도체 산업의 '양대산맥'인 삼성과 SK를 비롯해 카카오·크래프톤처럼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을 만나 우군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한 관계자는 "오픈AI의 첫 행보가 개발자 워크숍이었는데, 폐쇄형 AI와 오픈소스 AI 간 '글로벌 표준 전쟁'의 서막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올트먼 CEO의 이번 방한 일정에서 국내 정부 관계자들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전날 일본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만났고, 다음 방문지인 인도에서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및 아슈위니 바이슈노 정보통신부 장관 등과 회동하기로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2023년 올트먼의 첫 방한 당시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면담하고 중소벤처기업부 초청으로 국내 스타트업들과 간담회를 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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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카카오’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5.2.4

◇ 카카오 "오픈AI와 서비스 공동 개발" LLM 자체 개발서 협력으로 선회

지난해 말 인공지능(AI) 서비스 '카나나'를 공개하며 생성형 AI 경쟁에 후발 주자로 뛰어든 카카오에도 챗GPT를 만든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은 중대한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카카오는 오픈AI의 GPT-4o를 비롯한 AI 기술을 기반으로 초개인화 AI 서비스 '카나나'를 고도화하고, 오픈AI는 카카오와의 협업을 교두보로 한국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나갈 전망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만나 "카카오의 5천만 사용자를 위한 공동 제품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비롯해 카카오맵·카카오모빌리티 등 한국 시장에 특화된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쌓은 역량 위에 오픈AI의 AI 기술력을 결합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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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오픈AI·카카오 전략적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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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간담회서 발언하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4

이는 한편으로는 카카오의 AI 전략이 자체 대형언어모델(LLM) 개발에서 AI 기반 서비스 개발로 완전히 선회했음을 보여준다.

카카오는 초거대 인공지능이 산업계 화두로 떠오른 2023년 야심 차게 자체 개발 대형언어모델(LLM) '코GPT 2.0'을 발표했으나, 출시가 거듭 연기되며 사실상 사업이 좌초된 바 있다.

IT 업계에서는 '코GPT 2.0'의 성능이 오픈AI나 구글·MS 등 빅테크 기업의 LLM에 비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4년 카카오 수장에 취임한 정신아 대표는 AI 전담 조직 '카나나'를 신설하고 개발 리더십을 교체, 동명의 LLM 기반 AI 앱을 중심으로 AI R&D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네이버가 '소버린(주권) AI'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자체 LLM '하이퍼클로바X' 고도화에 주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해외 선두 기업과 손잡고 AI 앱 개발 역량에 집중하는 노선을 택한 셈이다.

올트먼 CEO는 오는 5일 인도 뉴델리로 떠나 현지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한 벤처업계 전문가는 오픈AI의 행보에 대해 "한국은 하드웨어, 인도는 소프트웨어 강자로 평가받는 만큼 오픈AI가 중국의 추격에 맞서 대항마로 '아시아권 동맹'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