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허 스님 글씨체 현대서체로 제작...누구나 무료 사용 가능
남양주 운허체
경기 남양주시는 한글날인 지난 9일 봉선사에서 남양주 운허체 배포식을 열었다. 2025.10.10 (사진 : 남양주시)
남양주시(시장 주광덕)는 10월 9일(목) 제579돌 한글날을 맞아 봉선사에서 남양주 운허체 배포식을 개최했다.
이번에 공개된 남양주 운허체는 근현대 불교학의 큰 스승인 운허 스님의 친필을 바탕으로 제작된 서체로, 스님의 사상과 필체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남양주시와 (사)운허기념사업회가 공동 제작했으며, 한글날인 10월 9일부터 남양주시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남양주 운허체는 스님의 글씨에서 느껴지는 단정함과 소박함, 힘 있는 필획을 그대로 담아내 디지털 시대에도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서체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배포식은 봉선사 개산대제와 연계해 진행됐으며, 홍지선 부시장을 비롯해 조성대 시의회 의장,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등 주요 인사와 시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시는 이번 배포식을 계기로 남양주 운허체를 시정 홍보물, 공공시설 안내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계획이다.
홍지선 부시장은 “한글날에 맞춰 남양주 운허체를 공개하게 돼 의미가 크고, 운허 스님의 정신과 글씨가 오늘날 서체로 재탄생해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뜻깊다”며 “앞으로도 지역의 역사적 인물과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남양주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운허 스님은 광복 직후 남양주 광동중학교를 설립했으며 1980년 봉선사에서 세수 89세, 법랍 59년으로 입적했다.
교종본찰 봉선사의 실질적인 중창주는 월초대화상으로, 한국불교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근대적 교육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앞 서 창건하였던 원흥사 자리에 1905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이 되는 명진학교를 설립한 분이다.
운허 용하(1892 ~ 1980) 스님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경기 남양주시는 한글날인 지난 9일 봉선사에서 남양주 운허체 배포식을 열었다. 2025.10.10 (사진 : 남양주시)
홍지선 부시장 왼쪽에서 네번째
남양주시청 홈페이지 운허체 (다운로드 가능) 링크
-아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 교종본찰 '봉선사' 선지식중 참고 기재합니다.
운허 스님의 속명은 학수(學洙), 법호는 운허(耘虛)이며 법명은 용하(龍夏)이다. 청년기 일제의 침략에 맞선 항일투사, 이후 종교인으로 불경의 번역가, 교육자로서는 후학의 양성에 전념한 분이다.
평안북도 정주군 출생으로 어린 시절 고향의 회헌재(會軒齎)에서 사서(四書)를 비롯한 한문고전을 배우고, 1909년 10월부터 1911년 3월까지 평양대성학교에서 2학년까지 수학하였다.
1912년 1월 만주로 건너가 봉천(奉天)에 있는 한인교포학교 동창학교 교원으로 재직했고, 이해 6월부터 배일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였다. 1914년 3월부터는 봉천성 홍유자 흥동학교를 설립해서 교포아동교육에 전념했고, 1917년 4월부터는 배달(倍達)학교를 설립하여 1919년까지 교포아동의 교육을 실시했다.
3·1운동 직후 4월부터 12월까지는 독립군정기관지인 한족신보(韓族新報) 사장에 취임하여 신문을 간행하고, 1920년 2월에는 독립운동기관인 광한단(光韓團)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그 뒤 국내단체와의 연계를 위해 비밀리에 잠입했다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강원도 봉일사(鳳逸寺)로 은신했다. 1921년 5월 경송(慶松)스님을 은사로 강원도 고성군 유점사에서 득도(得度)했으며, 6월부터 12월까지 유점사에서 불교초등과를 이수하고 서기를 맡아보았다.
1924년 동래 범어사에서 사교를 이수했고, 1926년 청담스님과 함꼐 전국불교학인대회를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 개최하여 학인연맹을 조직했다.
1929년 다시 만주로 건너가 봉천 보성학교의 교장에 취임하였고, 1930년 9월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했다.
1936년 경기도 봉선사에 홍법강원(弘法講院)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노력했다.해방 후 경기도 교무원장이 되었고, 46년 4월 광동중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에 취임했다.
1953년 애국동지원호회에서 『한국동립운동사』를 편찬하는 일에도 참가했다.
운허 스님은 춘원 이광수와 6촌간으로 어린시절 같이 공부하면서 자라났다.
이광수가 친일변절자의 오명과 아들 봉근의 죽음 등으로 괴로워할 때 『법화경』을 소개해주어 불교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으며, 감명을 받은 춘원이 '법화행자'의 길을 걷도록 조력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경을 번역하는 것을 평생의 원력으로 삼고 1964년 동국역경원을 설립하여 초대원장이 되었다. 1961년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편찬했고, 1962년 종교인으로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훈장을 받았고, 1978년 동국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11월 18일 봉선사에서 속랍 89세, 법랍 59세로 입적했다.
남양주 운허체로 쓰인 운허스님 발원문
남양주 운허체
경기 남양주시는 한글날인 지난 9일 봉선사에서 남양주 운허체 배포식을 열었다. 2025.10.10 (사진 : 남양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