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우뚝 1천775자로 새긴 호태왕의 역사…광개토대왕비 탁본, 프랑스 아시아학회 보관본 새로 확인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탁본과 혼동으로 연구방치...기증자 아시아 불교미술 연구 앨리스 게티 가능성

류임현 기자 승인 2023.11.23 12:56 의견 0

길림성 우뚝 1천775자로 새긴 호태왕의 역사…광개토대왕비 탁본, 프랑스 아시아학회 보관본 새로 확인

서구권에서는 두 번째…"중복된 2면 탁본, 같은 시기 제작돼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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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이 소장한 광개토왕비 탁본 왼쪽부터 제1면, 제2면(A), 제2면(B), 제4면을 탁본한 자료. 탁본 사진은 올해 10월 12일 촬영된 자료로 박대재 교수가 학회 도서관에 요청해 받은 것이다. [콜레주드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쉽게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비로 불리는 비석의 원명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 씌어 있다. "국가 강성하여 상에 이르니 널리 국토를 여시고 국경이 평안하여지어 타 ᇹㅐ왕으로 일컬어 존숭합니다.(기자 번역.)"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광개토대왕(재위 391~412) 사후 2년 뒤 아들 장수왕 2년(414)에 길림성(현 중국 지린(吉林)성)에 건립된 것이다.

아들 장수왕(재위 413∼491)은 부친의 능을 조성하며 높이 6.39m에 이르는 비석을 세웠다고 전하고 있고, 총 4개 면에 1천775자가 새겨져 있다.

이 번에 확인된 호태왕 비석의 탁본(拓本)은 탁본들중 또 다른 이본 자료가 프랑스에서 새로 확인된 것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이 아닌 서구권에서 확인된 데다 다른 탁본과도 차별화되는 점이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가 찾은 탁본은 그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아시아학회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자료로, 1917년 5월 11일자 학회 회의록에 따르면 '게티 여사가 기증했다'고 돼 있는데, 여지껏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탁본과 혼동한 이유로 그동안 프랑스 연구권조차 방치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23일 학계에 따르면 박교수는 오는 24일(현지시간) 프랑스 고등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새로운 광개토왕비 탁본 발견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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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 북면 탑본 작업 모습 1910년대 후반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건판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탁본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에두아르 샤반(1865∼1918)이 수집한 자료로 그간 '샤반 본(本)'으로 불리며, 동아시아 이외 지역에 있는 유일한 탁본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 번에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 측은 최근에야 또 다른 탁본 존재를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교수는 "도서관에서도 지난해 말 학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며 "올해 9월 이런 내용을 인지해 실측 조사,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에 따르면 광개토왕비 탁본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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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면 일부를 비교한 것 현재 남아있는 여러 탁본과 박대재 고려대 교수가 이번에 새로 확인한 탁본(두 번째)을 비교한 사진 [박대재 고려대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로 37∼38㎝, 세로 63∼67㎝의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여 비석 면에 새긴 글자를 찍어냈으며, 총 4면 가운데 3번째 면을 제외한 1면, 2면(중복), 4면이 확인됐다.

탁본은 비석 면에 석회를 발라 균열이 있는 곳이나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일부 조정한 후에 찍어내는 방식의 석회 탁본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전하는 광개토왕비 탁본 자료 100여 종 가운데 약 80%가 석회 탁본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수는 "제3면이 빠지고 제2면이 중복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 "다만 중복된 2장은 접지방식과 먹색이 동일한 점을 고려하면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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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비 모습 1912∼1913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건판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조사에 참여한 복원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종이 재질은 중국의 선지(宣紙), 일본의 화지(和紙)와 다른 제3의 종이로 추정된다고 한다"며 한지일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이 탁본이 1907년 입수한 '샤반 본(本)'보다는 늦은 시기에 제작됐으리라 봤다.

그는 "기증자는 아시아 불교 미술을 연구한 앨리스 게티(1865∼1946)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1908∼1913년에 자료 조사를 위해 아시아 지역을 3차례 답사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광개토왕비) 탁본 가운데 유일하게 같은 시기에 제작된 복본(複本)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가치를 지닌 자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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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가 수집한 사진 자료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 중국 지린성은 유리로 외부 건물을 지어 들여놓은 상태다.

류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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