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우조우지(增上寺) 소장 불교경전…히로시마 원폭 시각자료는 포함 안돼

쩌우(增) + 카미떼라(上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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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조지 소장 고려대장경 목판 인쇄물 '무량수경' 일부 [문부과학성 자료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 도쿄 사찰인 쩌우조우지(增上寺)가 소장한 고려대장경 등 목판 인쇄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지난 4월11일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열어 '조조지가 소장한 3종의 불교 성전(聖典) 총서'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쩌우조우지 불교 성전은 중국 남송 시대(12세기)와 원나라 시대(13세기), 한국 고려 시대(13세기) 때 대장경 목판으로 찍은 불교 인쇄물이다.

17세기 초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전국에서 수집해 쩌우조우지에 기증한 것으로 중국과 고려 인쇄물을 합치면 약 1만2천 점에 이른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이 자료는 남송시대 대장경 5천342첩, 원나라 시대 대장경 5천228첩, 고려대장경 1천357책으로 구성된다.

문부과학성은 "많은 대장경이 왕조 변천과 전란으로 흩어져 없어진 가운데 15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3개 대장경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있는 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고 유산 가치를 설명했다.

쩌우조우지는 해당 유산에 대해 "대장경이 활판 인쇄돼 널리 유통되면서 불교는 근대적 학문의 대상이 됐고, 현대에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아카이브가 구축됐다"며 "지속 가능한 지구 평화와 조화를 위한 세계 정신문화사의 일환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일본 정부가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심사에서 반려됐던 것으로 알려진 쩌우조우지 불교 성전을 2023년 재신청하겠다고 발표했을 당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 유물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사실상 류큐 왕조는 고려의 몽골 항전기 강화도에 옮겨져 있던 고려의 중요 서적등 각종 보물을 숨겨 갖고 이동하며 항전을 계속하던 고려의 항전 세력이 세운 국가로도 알려지고 있어 당시 옮겨 갔던 각종 보물 등이 도난과 압수(?) 및 헌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들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 또한 추정 가능하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가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가치 있는 기록유산을 선정하는 사업으로 다른 나라에서 기원한 기록물을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되어 있어 이 번에 등재된 것이다.

한편, 일본이 쩌우조우지 목판 인쇄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한 '히로시마 원폭의 시각적 자료 - 1945년 사진과 영상'은 이번 등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 上寺 : 한자 문화권 내에서 대체로 부녀자(婦女子)들이 불공(佛供)을 드리려고 절에 올라가 묵던 일. 다만, 자식을 낳기를 비는 불공을 드리던 양반귀족·사대부 부인들과 승려 간에 밀교(?)가 생기는 등 폐단(弊端)이 발생하자 금지(禁止)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かみでら[카미데라]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현재 일본 후쿠오카현 아사쿠라시(福岡県 朝倉市)의 지명이기도 하다.

경주 석가탑 내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 경 복원도.

고조선보다 더 고대 고리(끼레이)로부터 전래된 전통 보타닉(botanic) 삼(마)베지의 사용 이후 전개된 (추정) 전통 닥종이에 인쇄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최고의 목판 인쇄물이다.


약 3000년 전 파피루스 문서. 영국박물관에서 소장 중 ‘파피루스 솔트 124’는 이집트 제20왕조이자 람세스 2세의 손자 세티2세 때부터의 기록이 적힌 파피루스로, 당시 이집트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참고로 기재하자면, (이하 본 지 필자의 연구 이론등을 기초로 참고 기재하였으므로 의문점이 있거나 질의가 있다면 연락 바란다.)

일본에 목판 인쇄술이 전래된 것은 현재 약 8세기 신라시대 경 당나라 (개발?등 추정) 목판인쇄술 전성기 거쳐서 전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사실상 고조선보다 더 고대 고리(끼레이)로부터 전래된 전통 보타닉(botanic) 삼(마)베지의 사용 이후 전개된 (추정) 전통 닥종이에 인쇄된 경주 불국사 석가탑 내부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남아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이다.

후한 시대 이후 중국 중원의 목활자 인쇄술 및 인쇄물과는 물론 차이가 있다.

일본으로 불교가 전성하기 시작한 시기는 신라 승려 이차돈(異次頓)이 순교한 527년 이후이며, 아스카(飛鳥) 시대에 왕이 불교도가 되는 것에 찬성한 소가씨족이 승기를 잡으며 점차 친불교적 아스카 시대가 전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아스카 시대는 쇼토쿠 왕자가 백제의 혜총은 물론 수와도 대적하고 있던 고구려의 혜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유교와 불교를 배우는 등 한반도의 삼한(三韓)시대, 삼국시대의 문물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번성했다. 사실상 헐벗고(?) 사는 것에 가깝던 일본인들의 의복 양식에도 본격적인 영향이 전파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다만 결국 반기를 든 다른 씨족 일부가 일본에서도 오오키미(大兄) 천황 시대를 열겠다는 반란과 같이 소가 씨족등을 암살하고 다이카(大化) 개혁운동을 일으키며 대체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수도를 아스카에서 현재 오사카시 셋쓰의 나니와(難波, 현재 주오구)로 옮겨 정치의 중심을 호족에서 천황으로 바꾼 전환점을 마련했던 다이카 개신은 일찌기 유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650년에 연호가 하쿠치(白雉)로 바뀌면서 일단락 되었다.

참고기사 링크

http://sharimanzu.today/View.aspx?No=3162761

http://sharimanzu.today/View.aspx?No=3641524

류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