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소식에 장례식장 달려온 유족·업체 관계자들 오열…"사고 이해 안 가"
'열차 차단' 없이 작업자 투입…7명 사상 청도사고 안전소홀 비판
2019년 밀양서도 유사 사고…6년만에 닮은꼴 안전사고 반복
대피신호 작동 여부 등 확인 필요…'곡선 구간' 기관사 과실여부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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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 작업자 사망사고…열차 조사하는 경찰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7명을 치는 사고가 발생한 19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경찰과 소방, 코레일 등 관계자들이 사고가 난 무궁화호 열차를 조사하고 있다. 2025.8.19
19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 경부선 철로 인근 시설 안전 점검 작업에 투입됐다가 열차 사고로 숨진 하청업체 직원 2명 가운데 1명은 올해 입사한 30대 신입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또 다른 30대 직원은 외동아들로 밝혀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오후 5시께 이번 청도 열차 사고로 숨진 현장 안전 점검 근로자 이모(37)씨와 조모(30)씨 등 2명의 시신이 안치된 경북 청도군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타지에서 외동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들이 이씨가 오랫동안 근무해왔던 소속 업체 관계자들이 찾아오자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업체 관계자들 역시 유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올해 입사한 신입직원인 조씨는 평소 회사 선배인 이씨와 한 팀을 이뤄 현장 안전 점검 업무를 담당해왔다고 한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숨진 직원 2명 모두 자신 업무에 성실했던 사람들이었다. 사고로 부상한 다른 직원 4명도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라며 울먹였다.
이어 떨리는 목소리로 "업체를 운영하며 처음 겪는 인명사고"라며 "철도 운행 관리자도 있고, 신호수도 있었고, 담당 감독도 있었는데 (왜 사고가 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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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철도사고 사망자 안치 장례식장에 송출되고 있는 철도사고 소식 [촬영 윤관식]
앞서 이날 오전 10시 52∼54분께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동대구역을 출발해 경남 진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제1903호)가 선로 근처에서 작업을 위해 이동 중이던 근로자 7명을 치었다.
이들은 이 번 폭우로 철로 및 주위로 패이거나 무너진 곳 등을 점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5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를 당한 근로자 7명 가운데 1명은 원청인 코레일 소속이고, 나머지 6명은 구조물 안전 점검을 전문으로 하는 하청업체 직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망자 2명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로 조사됐으며, 나머지 부상자 5명은 경주와 경산, 안동 등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고 있다.
경찰 등 관계기관이 사망자가 나온 이번 사고 경위 조사에 착수했지만, 전문가 등은 전반적인 사고 상황을 고려할 때 관리·감독 소홀 등에 따른 전형적인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등은 열차가 사고 구간을 통과하는 시간에 근로자들이 선로 주변을 이동하고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이번 사고가 현장 안전관리 소홀이나 대피 신호체계 오작동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사고 근로자들은 이날 최근 폭우로 생긴 경부선 철도 남성현역∼청도역 구간 비탈면 구조물 피해를 맨눈으로 점검하기 위해 작업 승인을 받은 뒤 오전 10시 45분께 선로 주변으로 진입해 이동하다가 7분 만에 뒤쪽에서 접근하는 열차에 치여 변을 당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당시 작업을 위해 특정 시간대에 일부 구간 열차 운행을 멈추는 '차단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 측은 "(사고를 당한)작업자들은 위험지역 2m 바깥에서 이뤄지는 상례 작업(열차 운행 중 시행하는 선로 유지보수 작업)을 할 예정이었던 까닭에 절차상 (열차)차단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승인을 받은 뒤 작업자 이동이 이뤄졌다"면서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앞서 2019년 10월 경남 밀양시 밀양역 인근 선로에서 상례 작업 등을 하던 근로자 3명이 사상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해당 작업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며 적절한 안전대책을 요구하는 현장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게다가 이날 작업에 투입된 근로자 가운데 코레일 소속 직원에게는 열차 접근을 알려주는 기능이 있는 '감시 앱'을 설치한 휴대전화가 지급됐지만, 제대로 작동했는 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소방 관계자는 사고 뒤 브리핑에서 "(사상자들이) 작업을 하러 가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기차가 전기로 가서 소음이 별로 안 난다고 하더라. 피해자분들이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추측한다"고 밝혔다.
또 "사고 열차가 사상자들을 뒤쪽에서 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밖에 사고가 난 선로 구간이 '곡선 구간'인 까닭에 열차 기관사가 사고 지점까지 이르러서도 선로 주변 작업자들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이동 인원들을 확인했더라도 미처 경적을 울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나온다.
현장 확인 결과 사고 현장은 철도 커브길 부근에서 123m가량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차에 선로 작업자 치여 7명 사상…현장 조사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인근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7명을 치는 사고가 발생한 19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소싸움 경기장 인근 경부선 철로에서 코레일 등 관계자들이 사고가 난 선로를 조사하고 있다. 2025.8.19
김중진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는 "열차가 접근할 때 작업자들이 선로 주변을 걷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로 전형적인 인재로 보인다"며 "통상 선로 주변에서는 열차가 들어오기 전이나 완전히 지나간 후 작업자들이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당시 대피 신호체계가 제때 작동했는지, 현장 감독자가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이 번 사고가 발생한 것과 관련, "더 이상 땜질식 처방은 안 된다"며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철도노조는 "이번 사고는 2019년 밀양역 사고와 판박이"라며 "밀양역 사고 이후 운행 선상에서 이뤄지는 죽음의 상례 작업(열차 운행 중 시행하는 선로 유지보수 작업)은 중단됐지만, 위험지역을 벗어 난 선로변 작업은 여전히 상례 작업으로 진행돼 왔고 결국 오늘 작업자들의 죽음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열차가 다니는 주간에는 운행선을 차단하고 작업하지만, 인접선은 여전히 열차가 다니는 상황으로 이에 대한 안전조치가 없는 실정"이라며 "지난해 구로역 사고가 인접선 운행 열차와 충돌해 발생한 대표적 사례로, 코레일은 사고 직후에야 인접선도 차단하는 조처를 했다"고 지적했다.
철도노조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제2·제3의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며 "현장을 잘 아는 노동자가 참여해 총체적인 안전 점검을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북경찰청은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열차 사고의 경위 및 원인 등의 규명을 위해 전담팀을 구성했으며, 현장 폐쇄회로(CC)TV 분석과 사고 관계자 조사 등에 나설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다친 근로자 등을 상대로 소속 회사와 작업 책임자 등이 철도안전법 등 관련 법에 따른 안전조치를 했는지 등을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사고로 사고 구간 상행 선로를 이용해 상·하행 열차가 교대 운행한 탓에 일부 열차 운행이 지연됐다.
사고 열차는 이날 낮 12시 44분께 목적지인 경남 진주 방향으로 다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