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대학에 공 넘긴 의대생…학사 정상화 대책 주목
전공의 단체도 14일 국회 간담회…9월 복귀 선결조건 논의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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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1년 반 가까이 학교를 떠나있던 의대생들이 이 번 정권 들어 전격적으로 복귀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장기간 이어진 의정 갈등에도 출구가 보이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학생들의 복귀 길을 열어주기 위한 정부와 대학의 대책이 조만간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를 위한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 의대생들, 동맹휴학 1년 5개월 만에 "전원 복귀하겠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지난 12일 국회 상임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함께 입장문을 내고 "국회와 정부를 믿고 학생 전원이 학교에 돌아감으로써 의과대학 교육 및 의료체계 정상회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이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2천 명 증원에 반발해 '동맹 휴학'에 나선 지 약 1년 5개월 만이다.
의대생들은 이후 지난해 7월 정부가 유급 면제와 국시 추가 실시 검토를 제시했음에도 복귀를 택하지 않았고, 올해 4월 정부가 의대 증원을 되돌리면서 복귀를 유도했을 때도 대다수가 '등록 후 수업 불참' 등의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갔다.
정부의 잇따른 유화 조치에도 응답하지 않았고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온 의대협이 표면적으로는 조건을 내걸지 않은 채 먼저 복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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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하는 이선우 비대위원장
1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왼쪽 두번째)이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 등과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입장문'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7.12
이 같은 입장 변화에 대해 이선우 의대협 비대위원장은 "전 정부 때 잃어버린 신뢰관계를 (교육·복지위원장 등과) 장기간 대화하며 회복해왔다"고 설명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의료계 간에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고, 복귀를 희망하는 의대생들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의대협 집행부의 대안 없는 강경 투쟁에 대한 학생들의 피로와 불만이 쌓여간 점도 이러한 입장 선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 복귀 시점은 정부·학교에 달려…'교육 질' 담보할 대책 마련 관건
다만 의대생들이 복귀를 선언했다고 해서 당장 월요일부터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선 당장 7월에라도 1학기 수업에 복귀하고 싶다는 요구가 나오지만, 교육의 질을 담보할 학사 운영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먼저 복귀한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이선우 위원장은 전날 이와 관련해 "압축이나 날림 없이 제대로 교육받겠다"면서도 "7월에 돌아가면 학사일정이 2월보다는 좀 늦어질 거 같은데 방학기간 조절 등을 통해 충분히 불합리한 일 없이 합류할 방안 자체는 있다. 그런 부분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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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학기 복귀도 간단하진 않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의대는 학사가 1년 단위로 이어지기 때문에 올해 1학기 유급 조치를 받으면 2학기 복학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지난 5월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유급 대상자는 8천305명, 제적 대상은 46명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이번 복귀 선언은 정부와 대학들에 공을 넘기고 "복귀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교육부는 그동안 의대생들이 요구하는 학사 유연화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의대 학장들도 일단은 "교육 기간의 압축이나 학사 유연화는 고려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 이사장은 "학생들의 복귀 의사를 환영한다"면서도 "학생들의 복귀를 위해선 학칙을 변경해야 하고, 의학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준비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말했다.
의대협회(KAMC)는 전날 전국 의대 학장들에 "1학기 성적 사정(유급)은 원칙적으로 완료하고 새 학기를 시작한다", "협회는 학생 복귀 이후 교육의 질 저하 없는 기본적 교육과정 운영 모델을 제시한다"는 등의 기본 원칙을 공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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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전공의 복귀는?…하반기 모집 앞두고 '선결조건' 논의
의대생과 함께 의정 갈등 해소의 열쇠를 쥔 또 다른 주체인 전공의들의 복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상적인 의대 교육을 위해선 전공의 복귀도 필요한 상황이다.
전공의들의 경우 이미 지난달 '강경파'였던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이 물러나고 '대화파' 한성존 새 비대위원장이 들어서며 복귀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전협은 이달 초 전공의 8천458명 설문을 통해 ▲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개혁 실행방안 재검토 ▲ 입대 전공의 등에 대한 수련 연속성 보장 등의 복귀 '선결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대전협은 오는 14일 박주민 국회 복지위원장을 만나, 이같은 전공의 의견을 전달하고 비공개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이어 19일에는 임시대의원총회를 통해 전공의들의 의견을 한데 모은다.
사직 전공의들의 경우 이달 말 공고될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통해 병원에 복귀할 수 있다. 이들은 차질 없는 복귀를 위해 입영 대기 상태인 전공의들의 입영 연기 조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일단 이러한 특례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전공의들의 요구안이 구체화하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면 장기화한 의정 갈등도 마침표를 찍는 셈이다.
다만 전공의들의 경우 이미 절반 이상이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해 근무 중이고, 수련을 포기한 이들도 일부 있어 의대생들과 같은 '전원 복귀'가 이뤄지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복귀 길을 열어주는 과정에서 정부가 내놓을 조치들이 또다시 '특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고려해야 할 숙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의료단체들의 회동 이후 낸 성명에서 "정부가 전공의·의대생에게만 지속해서 특혜성 조치를 하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이는 "먼저 돌아온 전공의·의대생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