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휴양객 연기"…러 기자가 전한 北 원산해변
14가지 코스요리 1만4천원, 호텔은 1박에 12만4천원
"러 외무장관 도착 이후 북적…하루종일 당구 치는 남녀"
러, 北 원산 리조트 폐쇄 부인, "美언론이 가짜뉴스"
북한은 "외국인 관광객 잠정 수용 중단"…국가관광총국의 '조선관광' 공지
북한 TV도 "원산 해변 외국 손님 안 받아"
2025.06.24.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 총출동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딸 김주애가 건물 위에서 해안을 시찰하고 있다.
2025.06.24.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딸 김주애 일가족이 총출동했다.
14가지 음식이 나오는 코스 요리가 10달러(약 1만4천원). 세계적 체인 호텔 못지않은 객실은 1박에 90달러(약 12만4천원). 그리고 해변에는 관광객인 척하는 것 같은 조선노동당 당원들.
지난 11∼13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따라 북한에 출장 다녀온 러시아 기자는 둘러본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리조트의 장면에 대하여 "어색한 휴양객 연기" 같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브로프 장관은 북한이 지난 1일 강원도에 개장한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에 초대된 첫 외국 고위 인사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14일(현지시간) 북한에서 세계적 휴양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며 자사 기자의 체험기를 소개했다.
이 기자는 원산공항에서 관광지구로 이동하는 길에 '펍'(Pub), '레스토랑'(Restaurant), '비디오 게임 센터'(Video Game Centre) 등 예상과 달리 영어 간판이 즐비해 놀랐다고 전했다. 또 모든 가게의 간판에 영어가 병기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현재 러시아가 사실상 유일한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 국가이고 올해 1∼5월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인 수가 2019년 한 해 동안 방문한 수의 3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지만, 러시아어나 중국어 표기는 찾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도착 첫날 북한 측의 초대로 호텔 식당에서 식사한 기자들은 전채요리 4종, 주요리 7종, 디저트 3종 등 14가지 음식으로 구성된 코스 요리를 대접받았다고 한다. 이 기자는 인삼을 넣은 닭, 게, 가지, 오리고기, 소고기, 생선요리 등이 포함된 이 코스가 1인당 10달러에 불과했다며 놀라워했다.
1박에 90달러인 호텔 객실은 슬리퍼, 다양한 크기의 수건, 다리미, 일회용 세면도구, 특산 음료로 가득 찬 미니바 등이 비치돼 있었고 발코니에서는 수㎞ 해변이 내려다보였다고 전했다.
다만 지난 12일 이달 초 이 관광지구에 러시아인들이 방문했다고 보도한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곳에서 사흘간 머무는 것을 포함 일주일간 북한을 여행하는 상품의 가격은 약 1천800달러(약 250만원)로 러시아 근로자 평균 월급보다 60%가량 더 높은 수준이다.
세계적 관광지들과 경쟁하여 대규모 러시아 관광객, 특히 근로자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었다면 사업비전(?)의 타겟과 전략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북한 국가관광총국의 '조선관광' 공지 및 조선중앙 TV 또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잠정 수용 중단을 공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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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야경
지난 1일 개장한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십리백사장에 해안관광을 즐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연일 흥성이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202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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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통신에서 '내국인 관광객이 이용 중'이라고 발표한 것과도 달리 러시아 기자의 체험기에조차 12일 오전까지 해변은 텅 텅 비어 있었다.
호텔 2층에는 아침부터 정장을 입은 남녀가 당구를 치고 있었으나 이들은 점심 기자회견 후와 저녁에도 당구를 치고 있었고, 늦은 밤 기자 대부분이 방으로 들어간 이후에야 자리를 떴다고 한다.
이 기자는 "이 커플은 최악의 역할을 맡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공원 벤치에서 담배를 계속 피우는 사람,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 바 테라스에서 맥주잔을 들고 앉아 있는 사람 등 다른 사람들은 강한 햇볕 아래에서 휴가객인 척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북적이는 리조트의 모습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 중 일부는 북한 지도자들의 사진을 담은 배지를 옷에 달아 조선노동당 소속임을 드러냈으며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구사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12일 저녁 해변에서 러시아 관광객을 마주친 뒤에야 비로소 러시아 관광객이 원산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러시아 관광객들은 기자에게 "많은 우여곡절이 있어서 이 휴양지에 도착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했으며, 라브로프 장관이 도착한 11일 이후에야 일광욕하거나 물놀이하는 북한인 등 '생명의 신호'가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러시아 관광객들이 라브로프 장관이 도착한 날에 맞춰 원산에 온 것, 당구장 커플의 행동 등 여러 의심스러운 장면들이 단순한 우연이었는지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며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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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서 자전거 체험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백화점, 영화관, 극장, 자전거임대소 등 각종 봉사시설의 운영준비를 완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대여해 해안도로를 달리며 관광을 즐기고 있다. 202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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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AP 통신 등 미국 언론이 북한 원산 리조트 단지에 대하여 "폐쇄" 되었다고 보도를 하자 러시아측은 "전형적인 거짓말"이자 "노골적인 가짜 뉴스"라고 강력히 부인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를 인용했으나 러시아는 폐쇄를 발표한 북한 당국이 아닌, 이를 보도한 미국 언론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던 것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자국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미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미국 언론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의 방문 이후에 북한이 러시아인에 대해 원산 리조트를 폐쇄했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 전략이 실패한 것을 본 미국 군사·정치 기득권의 통상적인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1∼13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강원도 원산 해안에 조성한 리조트 단지를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최선희 외무상을 만났다. 라브로프 장관은 당시 "러시아 관광객이 이곳을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취재진도 동행해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를 둘러봤다.
지난 12일 영국 BBC방송도 이달 초 이 관광지구에 러시아인들이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BBC는 이곳에서 사흘간 머무는 것을 포함해 일주일간 북한을 여행하는 상품의 가격은 약 1천800달러(약 250만원)로, 러시아 근로자 평균 월급보다 60%가량 더 높은 수준으로 보도한 것.
BBC가 문의한 러시아 여행사 측에 따르면 8월 출발 일정의 여행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이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가 러시아인에게 개방된 상태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북한 당국은 이날 해당 리조트 단지에 대한 외국인 관광객의 수용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조선관광은 이날 공지를 통해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가 "외국인 관광객을 잠정적으로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보름여 간의 운영을 통해 보완할 점이 발견됐기 때문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연건평 144만 9.100여㎡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과 유사한 면적이다. 북한은 이곳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겠다며 무려 약 2만명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 여관, 민박 그리고 수상방갈로, 관광안내소, 은행, 헬스장, 극장, 영화관, 공연장, 야외물놀이장을 비롯한 각종 레저시설을 갖춘 여러 시설들을 들여넣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몇 해나 지연 된 지난 준공식에 이어 개장된 이곳에 대하여 앞 서 지속적으로 내국인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 여행객 등을 유치하는 관광산업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고 선전해 왔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서 물놀이하는 북한 주민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일 개장한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십리백사장에 해안관광을 즐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연일 흥성이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2025.7.3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서 물놀이하는 북한 주민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일 개장한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십리백사장에 해안관광을 즐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연일 흥성이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2025.7.3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연일 흥성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전국각지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근로자들로 연일 흥성이고 있다고 조선중앙TV가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화면] 2025.7.16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도 원산갈마 해양관광지구의 모습을 전했다.
이즈베스티야는 파랑, 초록, 분홍 등 밝은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인상적이었으며 외곽에는 신축 건물도 많이 보여 최근 북한의 주택 건설 발전을 방증했다고 밝혔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매우 청결했고 흰 제복을 입은 교통 관리원이 통행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운행 중인 차는 드물었다며 "연료 절약 문제 때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또 일반인도 다양한 스마트폰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에 주목했다.
휴양지에는 현지 주민들이 물놀이하고 있었지만,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해변은 15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북한 주민들이 머무를 수 있는 일부 구역에는 외국인 출입이 금지됐다"며 현지 관리인이 기자의 접근을 저지했다고 설명했다.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러시아 관광객들은 전반적으로 만족감을 드러냈으며 패키지여행 가격은 1인당 1천600∼1천800달러(약 220만∼250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20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로 전국 각지의 수많은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이 찾아와 "웃음과 낭만의 장관이 연일 펼쳐지고 있다"고 선전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관리자 "외국 손님은 안 받는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한 관리자는 20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외국 관광손님들을 잠정적으로 받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2025.7.20 [조선중앙TV 캡처]
북한 TV도 지난 1일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대해 "외국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한 관리자는 20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외국 관광손님들을 잠정적으로 받지 않는 상태"라며 "현재 관리국에서는 우리 인민들이 해안 관광의 진미를 한껏 느낄 수 있게 관광조직과 봉사활동을 보다 세밀하게 조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리자는 외국인을 수용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앞서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인 조선관광은 지난 18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대해 "외국인 관광객은 잠정적으로 받지 않고 있다"고 공지한 바 있다.
주로 외국인이 북한 관광을 위해 찾아보는 웹사이트에 이어 모든 북한 주민이 시청하는 중앙TV에도 동일한 안내를 한 것이다.
북한이 여름 성수기임에도 외국인을 잠정적으로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비싼 비용 등으로 생각보다 수요가 없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 뒤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만 명 규모의 매머드급 위락시설을 인파로 채우려면 어마어마한 홍보와 안정적인 관광상품 판매 루트가 있어야 한다"며 "북한이 러시아, 중국과 추가로 고위급 접촉을 통해 필요한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보름여간 운영해 본 결과 외국인 대상의 시설 관리 등에서 미흡한 점이 발견돼 보완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야경
지난 1일 개장한 북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십리백사장에 해안관광을 즐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연일 흥성이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2025.7.3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