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보선, 유연한 온건개혁파 대통령 당선…대화? 대외정책 큰 변화야 어려울 듯

류임현 기자 승인 2024.07.06 16:40 | 최종 수정 2024.07.06 16:49 의견 0

서방언론·전문가, 페제시키안 대화 선호·유연성에 주목했으나

"제한적 대통령 권한·보수강경파 장벽 탓 개혁에 한계"

체제순응형 인사로 평가…선 안넘는 "레드라인 지킨 덕에 대선 출마" 총평

외신과 서방 전문가들은 이란의 새 대통령으로 온건 개혁파가 당선되자 이란과 서방 간에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란에서 대통령의 권한에는 한계가 있고 일촉즉발의 중동 정세 속에 내부 권력 구조상 보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 대외정책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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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선에서 승리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AFP=연합뉴스]

이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온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가 최종 승리했다.

6일(현지시간) 오전 이란 내무부와 국영 매체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결선투표 개표가 잠정 완료된 결과 페제시키안 후보가 유효 투표 중 1천638만4천여표(54.8%)를 얻어 당선됐다.

맞대결한 강경 보수 성향의 '하메네이 충성파' 사이드 잘릴리(59) 후보는 1천353만8천여표(45.2%)를 득표했다. 이란에서 결선으로 대통령 당선인을 가린 것은 2005년 이후 19년만이다.

2021년 취임한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며 갑자기 치러진 이번 대선 결과로 이란에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행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새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 라이시 전 대통령의 잔여 임기 1년이 아닌 온전한 임기인 4년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202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된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심장외과의 출신으로 2001∼2005년 온건·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에서 보건장관을 지냈다. 마즐리스(의회) 의원에 출마한 2008년부터 내리 5선을 했고 2016년부터 4년간 제1부의장을 맡았다.

그는 경제 제재 완화를 통해 민생고를 해결해야 한다며 핵 합의 복원과 서방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으로 다른 보수 후보들과 차별화했다.

2013∼2021년 하산 로하니 행정부 때 추진된 국제자금세탁기구(FATF) 가입 방안도 다시 꺼내들었다.

또 선거전 내내 히잡 단속을 완화하겠다고 밝히며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불만이 누적된 청년·여성층 표심을 끌었다.

5일(현지시각)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열린 이란 테헤란에서 히잡을 쓴 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2024.07.06.

미국 CNN 방송은 5일(현지시간) 치러진 이란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에 대해 그는 이란의 적들과의 대화, 특히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대화를 선호해왔으며 이를 국내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보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페제시키안이 이란과 서방 국가들의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페제시키안이 국내적으로 선거 운동 기간 강조한 일부 사회 변화를 도입할 수 있지만 실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전문가 사남 바킬은 페제시키안의 당선이 즉각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바킬은 "그러나 페제시키안이 아마도 덜 억압적인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을 통해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바킬은 페제시키안이 그런 변화를 보장하지 않았다며 이는 이란에서 대통령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회적 자유에 대한 변화의 여지가 조금 있을 수는 있다고 관측했다.

이슬람 '신정일치' 체제의 이란에선 최고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갖고 있다. 국방, 안보, 외교 등 국가 주요 정책은 최고지도자의 뜻을 따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이란 대리세력의 개입 등으로 중동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맡게 된 페제시키안이 최고지도자의 뜻을 거스르며 이란 외교정책,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노선을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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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방 국가들 입장에서는 이란 대선 결과가 양측 관계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하지 않지만, 중동 긴장을 악화시킬 수 있는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보다는 페제시키안을 분명히 선호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강성 후보에 대한 두려움이 '도덕 경찰'을 통제하고 핵 협상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한 페제시키안의 당선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WSJ은 페제시키안이 서방과의 대립 관계를 완화할 수 있음을 예고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법부, 군부, 고위 관리들을 비롯한 보수적 기관들이 지배하는 이란 체제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힘겨운 싸움이라는 것이다.

강제적인 히잡(머리를 가리는 베일) 착용을 완화하고 서방과의 핵 협정을 통해 경제를 되살리려는 페제시키안의 의욕은 보수적 의회의 반대에 직면할 수 있다고 WSJ은 예상했다.

그는 히잡 착용 의무화의 종식을 요구하지 않고, 히잡을 쓴 딸과 함께 집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이란 정권의 '레드라인'(넘어설 경우 대가를 치러야 할 기준선)을 넘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전문가 알리 바에즈는 "페제시키안의 유연성이 다른 사람들이 경기(대선)에 나가지 못하게 됐을 때 그가 살아남아 경기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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