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이주가정 도시빈민, 가난 탈출하려 주경야독 끝에 사법시험 통과
은인 신민당 YS 튕겨나가는 노무현 만나 인권변호사로
…성남시장 재선 후 경기지사로 존재감 키워
사법리스크·흉기 피습 등 여러 차례 위기도…총선 압승으로 대권 지위 다져
외신, 이 당선인 집중 조명…BBC "밑바닥부터 정치경력 쌓아 소외층 지지 받아"
블룸버그 "기본소득 철회 등 정책, 중도로 이동"
…CNN "'분열조장인물' 비판도"
소년공 시절의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1978년 야구 글러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이재명 대통령 모습. [이재명 대통령 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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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이재명 후보
제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당 주최로 열린 국민개표방송 행사에 참석해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5.6.4 [공동취재]
외국 언론들은 지난 3일 치러진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자 이 후보의 삶과 정치역정, 향후 과제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외신들은 계엄 및 탄핵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돼 한국에서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되자 일찌감치 이 당선인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밀고 있는 한국 정치를 흥미진진(?)하게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과 AP 통신, AFP 통신, CNN 방송 등 주요 외신들은 당선이 확정되자 이 당선인이 가난한 가정 출신의 미성년 공장 노동자에서 인권 변호사를 그쳐 정치에 입문하고 유력 대통령 후보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 등을 소개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 당선인에 대해 "산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화학 공장에서 노동하며 자랐다"며 "이 경험은 청력 손상과 팔 장애를 남겼고, 동시에 경제적 평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말한다"고 전했다.
CNN 방송은 "가난한 가정 출신의 미성년 공장 노동자였던 그는 인권 변호사가 된 뒤 정치에 입문했다"며 "인구 약 100만명의 성남시 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냈고,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아슬아슬하게 패한 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고 보도했다.
AFP 통신은 "가난에서 성공으로 이어지는 개인사는 많은 한국 정치 엘리트들과는 확연히 다른 배경을 보여준다"며 "소송과 스캔들, 무장 군인, 흉기를 든 괴한조차도 그가 공장 노동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직 문턱까지 올라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 방송은 "가난한 성장 배경은 한국 상류층으로부터 조롱받기도 했다"면서도 "밑바닥부터 정치 경력을 쌓아 올린 그의 성공은 노동 계층 유권자들과 정치 엘리트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이들 외신은 이 당선인이 지난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졌으며 2024년 1월 흉기에 목을 찔리는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도 대부분 다뤘다.
또 작년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당시 대응으로 주목받았다고 평가했다.
CNN은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국회에 파견했을 때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며 "그는 병력을 뚫고 국회에 진입해 계엄 해제를 시도한 의원 중 한 명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국회에 들어가는 모습을 실시간 영상으로 방송했는데, 이 영상은 수천만 회 이상 조회되며 화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BBC도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선포한 계엄령은 이 후보가 유력 대선 후보로 부상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며 "이 당선인은 계엄 선포 몇 시간 만에 생방송을 통해 국민에게 호소하며 국회 밖에 모여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에 수천 명이 경찰과 충돌하고 군부대를 막았으며, 야당 의원들은 계엄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국회 담과 벽을 넘어섰는데, 이 당선인도 그들 중 한 명이었으며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를 도왔다"고 부연했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이 당선인이 좌파 성향에서 중도 쪽으로 이동했다고 외신은 평가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과거 이 당선인은 자신을 (스스로 민주사회주의자라고 칭하는) 버니 샌더스와 비교하기도 했지만 지난 대선 이후 기본소득 도입과 같은 계획을 철회하거나 완화하면서 중도 쪽으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가계 지원을 위한 정부 지출 확대, AI 산업 발전을 위한 국가 지원, 그리고 재벌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약화하기 위한 소액 주주 권리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 당선인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몇몇 정책에서 메시지를 완화했다"며 "기본소득 같은 과거의 강력한 공약은 후퇴했고, 대신 기업들이 선호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완화, 상속세 개혁, 국내 생산 유지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등 실용적 이슈에 집중하고 있다"고 봤다.
외신들은 이 당선인이 여러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점 등 그를 둘러싼 논란도 언급했다.
CNN은 "그는 여러 논란에도 휘말려 있다"며 "현재 몇 건의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반대자들은 그가 한국 정치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한다"며 윤 전 대통령은 이재명 후보의 민주당이 정부 예산안을 훼손한 것을 계엄령 선포의 이유 중 하나로 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CBS 방송은 "이 후보는 10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 개발 스캔들, 불법 대북 송금 의혹 등 다수의 진행 중인 형사 사건에 직면한 채 취임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로부터 상당한 정도의 면책 특권을 가진다"고 전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2017년 3월 1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참가해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권 문란 법꾸라지 판 세상에서 이재명(61) 대통령 당선자는 '개천에서 용(?) 났다'는 상투적 표현을 대입해도 될 만큼 입지전적인 성공담의 주인공으로, 최근 펴낸 자전적 에세이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는 그가 그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록한 대목의 첫 문장이 '나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일 정도다.
이 후보는 스스로를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청소노동자, 어머니는 경기도 성남의 시장통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휴지를 팔아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가족은 시장에서 버린 썩은 과일로 배를 채우며 살았다고 한다.
자신을 괴롭혔던 가난은 생존의 원동력으로 빈민가의 소년은 밑바닥 삶에서 탈출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해 인권변호사가 됐다는 입지전이다.
참고로, 그의 형제는 5남 4녀. 그의 형제들 가운데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 있는 등 현재까지 정치적 갈등과 스펙트럼이 크고 차이가 넓은 편이지만 이 번 대선 과정에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이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검정고시를 거친 뒤 공인회계사에 합격한 그의 셋째 형은 2017년 향년 58세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자는 또한 검정고시로 법학과에 진학뒤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변호사를 개업하고 시민운동을 하다가 세상을 바꿀 힘이 필요하다며 정치권에 투신, 시장, 도지사를 거쳐 대통령까지 이른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궤적의 대표자다.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이나 기성 엘리트 정치인과 차별화된 비주류 성향, 직선적 표현 방식과 승부사 기질 등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도 한다.
실제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후보를 '전투형 노무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스스로 '법조계에 파견된 노동자'로 살았다고 회고할 만큼 노동자 의식이 뚜렷했다고.
이는 개혁적 정치인으로서 '대동세상',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는 정치적 지향점을 좌우로 흔들어 놓은 자양분인 셈.
한편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적 해법을 찾아내는 실용주의와 목표 지향적 성격도 강한데, 이는 가혹한 조건을 견뎌내며 체득한 생존의 원리로 볼 수 있다. 그의 지지세력들이 개딸들로 불리는 이유에는 그런 부분도 없지 않다.
그 덕에 2016년 촛불시위, 2020년부터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을 거쳐 사법 리스크와 흉기 피습이라는 위기를 딛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다만 이 같은 면은 한편으로는 일부 국민에게 불안감과 비호감을 안겨 준 요인이기도 하다.
1982년 중앙대 입학식에서 어머니 고(故) 구호명 여사와 기념 촬영을 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 [이재명 대통령 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빈민 출신 소년공…'쥐어 터지지 않으려' 검정고시 공부
이 후보는 경북 안동의 화전민 가정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고, 위로 누나 둘은 가난으로 어릴 적 여의었다.
이 후보는 봄에 피는 진달래꽃을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워야 할 정도로 가난했으며 5㎞ 산길을 걸어야 갈 수 있었던 초등학교에는 자주 결석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976년에 아버지를 따라 경기 성남으로 이주한 뒤 중학교 진학은 포기하고 6년간 소년 노동자로 생활했다.
나이가 어려 법적으로는 취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동네 형 이름을 빌려 위장 취업을 했었다.
시계공장에서 스프레이 작업을 하다가 후각이 상했고,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프레스에 왼팔이 끼여 골절상을 당해 그 뒤로 구부러진 팔을 장애로 안고 살았다.
공장 내 폭력에도 시달렸던 이 후보는 이런 삶에서 탈출하려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어 공장 관리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당시 공부하며 세운 세 가지 목표는 '남에게 얻어터지지 않고 산다',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산다'였다고 한다.
졸음을 이기려 책상에 압정을 뿌려 놓기까지 하며 주경야독한 끝에 검정고시를 통과해 장학금을 받고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해 교복을 입어 보는 게 꿈이었던 이 후보는 교복이 필요 없던 대학교 입학식에 교복을 사서 입고 갔단다.
◇ 노무현 강연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로…시민운동서 좌절 겪어
이 후보는 대학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회의 '거악'을 인식했다고 한다. 이는 공익적 삶을 살기로 한 계기이기도 했다.
다만 당시 캠퍼스 내에 가득했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와는 거리를 둔 채 사법고시에 매달렸다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혁과도 흡사하다. 유일한 생명줄이던 대학생 신분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1년 후인 1986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평생 정치 동지가 된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과는 사법연수원 동기로 만났다고.
이재명 대통령 당선자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또 한 번의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고 말한다.
사법연수원 시절 노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들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판·검사 경력 없이 변호사 사무실을 열면 생활비나 벌 수 있을지 고민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는 뭘 해도 굶지는 않는다"고 해 용기를 냈다고 한다.
이 후보는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철거민과 도시 빈민 노동자들을 돕는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95년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해 시민운동에 발을 들였다.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 의혹을 제기해 주목받았다.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당시 성남시장과의 전화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가 공무원 자격 사칭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3년 말 성남 구시가지 종합병원 두 곳이 동시에 폐업한 것을 계기로 벌인 공공의료기관 설립 운동에서 겪은 좌절은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성남시민 20만명의 서명을 받아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조례안이 상정됐지만, 한나라당이 다수를 차지한 시의회가 토론 절차도 없이 47초 만에 이를 부결시켰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던 이 후보는 시민들과 거세게 항의하다 특수공무방해죄로 수배되기까지 한다.
이 후보는 이를 계기로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며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1년 후인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 후보는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철거민과 도시 빈민 노동자들측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 성남시장 시절 파격행보…탄핵정국·2017 대선서 전국구 발돋움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이 후보는 자신의 첫 선거인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고, 2008년 총선에서도 민주당 공천을 받았으나 낙선했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다시 도전해 당선되면서 주목받는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 시정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2014년에는 재선에 성공하자 성남 3대 무상복지 정책으로 불리는 청년 배당·무상 교복·공공산후조리 지원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이 후보 스스로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성남시장 시절로 꼽을 정도로 당시의 시정 운영에 애착이 깊다고.
당시 추진한 보편복지 정책들은 '기본 시리즈'라는 이 후보의 정책 브랜드로도 연결된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보는 박근혜 정부와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2016년 정부가 지방재정 배분 방식을 변경하자 이 후보는 보편복지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11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이런 활약으로 이 후보는 '변방의 장수'에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서서히 민주당의 잠룡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같은 해 11월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 '탄핵'을 먼저 외치며 정치적 몸값이 올랐고, '사이다 발언'으로 더욱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에 도전장을 낸 이 후보는 의미 있는 3등으로 값진 기반을 마련했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나는 내내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이 한 회고다.
(사진 : 소년공에서 대통령까지, 이재명의 불굴 인생 역정)
◇ 경기도지사로 강력한(?) 밀어붙이기식 싹 쓸이력 과시…정권 재창출 실패로 좌절
이 후보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16년 만에 민주·진보 진영 경기도지사로 당선돼 명실상부한 대권주자로 체급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70년대 이후 부동산 개발붐에서 소외되던 부동산 개발 변방인들이 포섭되기도 한 '기본 시리즈'를 내세워 자신의 콘텐츠를 쌓았고, 2019년에는 계곡 불법 점유시설물 정비를 밀어붙이며 '이재명'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일명 그 지지세력 개딸들을 이끌고 관 주도로 토종닭, 오리등 가금 방목 백숙 세력 또한 쓸어버린 것.
개구리 올챙이 노래들도 한 동안 더 유행했다. 그는 기본소득 등의 공약을 내걸기도 했으나 실현된 적 없었고 결국 철회되었다.
코로나19 당시에는 방역 지침에 협조하지 않은 신천지 교단에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해 대응한 사례로 이재명 브랜드 그만의 이미지는 한층 강화했다.
'친형 강제 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을 때는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으나, 2020년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고 무죄를 확정받으며 고비를 넘겼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잠룡들이 줄줄이 무너진 가운데 사법 리스크를 걸어둔 채 생환한 셈인 그는 더불당의 유력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2021년 마침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혈투 끝에 이낙연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해 본선에 나섰고, 그러나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후보 측이 제기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끝내 본선에서 발목을 잡혀 앞 서는 윤석열 후보에게 대권을 내줬다.
윤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는 0.73%포인트로 역대 대선 사상 최소 득표율 격차였다.
◇ 총선 압승으로 대선주자 가치 증명…사법리스크·단식·피습
대선에서 패한 후보들이 당분간 '휴지기'를 가졌던 전례와 달리, 이 후보는 대선 패배 직후 당 총괄선대위원장으로 2022년 6월 지방선거를 이끌었다.
동시에 자신은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고자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을 비우고 떠나자 그곳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 후보 자신은 당선되고 당은 참패하자 당내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등 '사법리스크 방탄용' 보선 출마라는 비난이 일었다.
그런데도 당의 구심점 역할을 할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 속에 2022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된다.
당 대표 취임 1년을 맞은 2023년 8월 31일, "무능 폭력 정권에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에서는 사법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단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검찰은 그 이후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9월 23일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이 후보는 다시 한번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9월 27일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며 다시 한번 벼랑 끝에서 살아남았다.
지난해 1월 2일에는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 방문 도중 목에 칼을 찔리는 습격을 당했다.
동맥 손상을 피해 목숨을 건진 뒤 이끈 총선에서 야권이 압승하며 대권주자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다진 셈.
그러나 사법 리스크는 마지막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직선거법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족쇄를 푸는 듯했으나 지난달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이 후보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닥뜨렸다.
하지만 파기환송심 재판부와 대장동·백현동 등 개발 특혜 의혹 재판부가 공판 기일을 대선 이후로 미루었고, 이 후보는 현재 제21대 대통령 당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