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강현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의 서양화가 데뷔 전시회 인터뷰 사진(왼쪽)과 그가 그린 부인 김세원 성우 겸 전 EBS 이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TV·라디오에 의한 대중사회 형성 과정을 처음 연구한 1세대 언론학자 강현두(康賢斗)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2일 오후 1시30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3일 전했다. 향년 88세.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휘문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61년 KBS 공채 1기로 들어가 PD로 일하다 1963∼1966년 미국 방송사(WGBH-TV) PD로 활동하며 보스턴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사 학위는 1982년 미국 서던일리노이대에서 받았다.
귀국 후 서울대 신문연구소 강사, 한양대 조교수와 서강대 부교수·교수를 거쳐 1984∼2001년 서울대에서 강의했다. 한국언론학회장, 한국방송학회장을 지냈고, 2000∼2002년에는 '스카이라이프'를 운영하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초대 사장으로 활동했다. 정년을 앞두고는 서양화가의 길로 들어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고인이 76세 당시 서울대 명예교수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 갤러리에서 '강현두의 몸 이야기'라는 누드화 전시를 기획했을 때는 주위 친구들이 더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그는“물감 사고 붓 사느라 앉아서 따박따박 연금을 까먹고 있다”며 웃은 뒤, 그의 뒤에 보이는 그림이 "손주들이 보고도 못 본 척한다는 그 누드화다" 덧붙였다고.
이강수 한양대 명예교수와 함께 사회학과 출신 1세대 언론학자로 꼽힌다. 서강대에서 고인에게 배운 김동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은 "산학을 겸비한 최초의 언론학자로서 여러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대중문화론을 처음 소개한 분이셨다"고 말했다. 고인은 대중문화와 관련해 '대중문화론', '한국의 대중문화', '매스미디어와 현대사회', '현대대중문화의 형성', '현대사회와 대중문화' 같은 저서와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대중시대의 문화와 예술', '영화 속의 코미디, TV 속의 코미디' 등 번역서를 남겼다.
서울대에서 고인의 지도하에 석박사 논문을 쓴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매스미디어에 의한 대중사회 형성, 즉 매스미디어 사회의 탄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방송이 대중문화를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학자가 고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1988년 장인인 월북 작곡가 고 김순남씨의 작품인 가곡 '진달래꽃'과 '산유화' 등이 해금된 것을 계기로 북한 방송에도 관심을 쏟았다"며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자유주의자(리버럴리스트)였고, 사회과학대학 최고의 패셔니스트이기도 했다. '평생을 PD로 살아간 사회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인은 '북한매스미디어론'을 펴냈다.
부인은 동아방송 '김세원의 영화음악실'로 유명한 성우 출신 김세원 전 EBS 이사장이다. 월북 작곡가 김순남의 딸로, 그의 아버지 김순남은 남로당 당원이었고 북이 박헌영 등 남로당파를 숙청하면서 가까이 지내던 임화, 설정식 등이 처형 당하고 노동자로 제거 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남로당 계급은 몰락한 가운데 복권 되기도 했다.
김소월의 시에 부친 약산 <진달래꽃>, <산유화> 와 남기고 떠난 외동딸 김세원을 그리워 하는 <자장가> 외에는, 첫 해방가요 <건국행진곡> , 임화의 시에 곡을 붙인 <인민항쟁가>, 극작가 함세덕 원작 인민 봉기 연극 <태백산맥>(1947)의 음악 담당자를 맡기도 했으며, 연극 <산사람>(1948)의 음악을 맡는 등 존경 받는 음악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해방 전후에 남로당의 당원으로 대체로 좌익 예술가 단체인 "조선음악건설본부", "조선음악가동맹"에 가입해서 활동하다가, 1947년 이후 좌익 활동이 불법화되자 월북한 근대조선음악 소련파 음악가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남로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1952년 소련으로 유학해 모스크바의 차이콥스키음악원에서 아람 하차투리안(아르메니아계 소련인 작곡가 겸 지휘자)에게 배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남로당 계급 몰락 이후 복권 된 뒤로는 '남녘의 원한을 잊지 말아라', 바이올린 독주곡 '이른 봄' 및, 함경남도 일대의 여러 민요 등 전통음악 채보한 자료를 발표했다.
북측은 사상 첫 남북 클래식 합동음악회를 위해 2000년 8월 남측을 방문한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김순남씨의 딸인 김세원씨와 고인 강현두 교수를 환영 만찬에 특별 초청하기도 했다.
고인은 아들로 강원석(레이텀앤왓킨스 파트너 변호사)씨와 딸 강수진(채널A 상무)씨, 며느리 마혜원씨, 사위 백준현(자람테크놀로지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 발인 5일 오전 7시, 장지 시안가족추모공원.
▷ 동아방송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고 새로 들어선 장면 민주당 정부가 민간방송을 장려하면서 동아일보사가 1960년 그 허가 신청을 냈고 이듬해 5곳이 경쟁에 붙었으나 설립 인가를 받았다.
곧 이어 5.16 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은 무너졌으나 박정희 정권이 그 허가를 취소하지는 않으면서 2년 간의 준비 끝에 1963년 동아방송을 설립하였다. 라디오 AM 방송.
12.12 사태로 들어선 신군부 전두환 정권이 1980년 말 언론통폐합 실시로 KBS에 강제로 통폐합되어 KBS 제4방송으로 개칭, 동양방송 라디오 방송의 후신인 제3방송이 폐국되는 1981년 9월 7일 KBS 라디오서울로 다시 개칭되었다.
노태우 정권이 새로운 민영방송 SBS를 허가하면서 KBS 라디오서울은 1991년 3월11일 주파수를 SBS에 넘기고 완전히 폐국되었다.
이후 동아일보는 2010년 케이블 TV 종합편성 채널 허가를 승인받고 이듬해 말 채널A를 개국했다.
김세원의 아버지 김순남(金順男, 1917년 5월28일 ~ 1983년) 작곡가겸 피아니스트.
본명은 김현명(金顯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