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 pic으로도 게재하고자 하였으나 어브로드 & 포토에 간략히 게재합니다.

샤블(쇼블) 도르의 니사금, 온 누리 흐릉 리우리 드라곤 대릉원의 첨성대 밝히며 비드리오

…APEC 개최로 진성을 넘어 선녀의 푸세까지 연년하리

복희 선각의 파격은 . (1. 2, 3, 4, 5, 6, 7, 8, 9,10,) 0, .....

태호 괘 안 타, 극단(찌탄) 죽으려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것

호모 히크루스 히찌 (갑골) 문명과 호모 까락떼루스 언어종족의 낙동강 문명지

태호복희씨 동이의 아스달과 흐릉 고조선 그리고 옥황과 삼한까지

웁빠, 엎빠, 옵빠

Aㅏ (우) 랗(량)

木 子 [무 쯔]

샨띠. 샹띠. 헤드.

(참고; 젊은 게르-만은 어르-신 말 외 아가리 털면 아꾸아 담궈 버렸음. 바흐바흐는 아량도 좀 없었던 듯. 썈 담궈? 버리는. 앙글리칸트와도 다른 샤카. 쌀라메.)

복(뽁) 말. 랑그. 항그.

쾌히(해) 아래 모든 인간은 푸르고 또 붉었다. 골. 발ㄱ히-랗. 퍼스(perse). 오름푸스. 룸(눔). 쿵. 놈. 아레나? (홍익인간)

크- 롱 드라 샤카 튜 스딴스 튠 헴 탐 셭 슬ㅎ

초리 (독)수리 부리(베리) 이글-이글 샨

깝파 오, 콘 도르, 피마, 나바호, 체로키, 오마이라, 아파치, 깜보, 꾸에, (스)탄(탠, 탱),

독따레

(북, 당-장-유유서, 기, 빽터)

팍골 쁠라세 뽀로 피파

불러바, 배-베이, 걸-베이, 부르-막,

아스,마니, 아돌프f, 아도,니스, 페르세(포네), 훔바바, 탄(탕)꾸이,

이호, 가-이아, 가(르)마,

(데우스 헤랗 헤스티아 ......)

하날과 텬지 돌과 솔, 튬과 꾸어(锅) 솥 탕 그리고 묻엄

매ㄱ 삼국화, 셔블 도리 황금의 나라 텰리그 군주의 국가로 전개되다,

카람의 카차화 이어 기마화 된 군(쿤, 꾼)과 칸(가히의 몽골) 진에게서, 아직 (다이, 대)체가 되지 않은 홍진 세계의 띠, 떼끄논, 카논, 등의 논, 뇰들이 쫒겨나는 과정은 세계사의 맥락이 된다.

(까락떼 뽈리로 말은 이미 소통이 되고 있었을 것. (아)까리뇨. 탄꾼. 랑기. 나랗. )

cf) 참고; (샤)차탈휘육 튀르키예 자녀들은 '초쥬크(çocuk)'

페르시아의 대부분의 딸은 돜(دخت [dokht]) ; 돜, 즉 달구새끼

다만 소녀, 딸, 처녀, 동정녀는 돜따르دختر [dokhtar]

샤리(아)

ㅎ슬랍

탱-화

(반)니, (오)늬, 呢. 你.

이차돈(異次頓) 흰 색의 피를 좇다, 리와 기는 같지 않다 다만 모든 기에는 늬가 내재해 있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통일신라시대의 청동 범종으로, 상원사 동종(국보, 1962년 지정)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범종을 대표한다. 또한 같은 해 국보로 지정되었다.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이루어졌다.
9개의 유두(乳頭)가 각 들어 있는 유곽 밑으로 공양하는 비천상(飛天像) 2구(軀)를 배치하고, 그 사이에 서로 어긋나게 8판(瓣)의 연화당좌 2개를 배치했으며, 장문의 주문이 돋을 새김되어 있다. 공양하는 상의 주위에 보상화(寶相花)를 구름과 같이 피어오르게 양각했다는 것.
제작의 변으로, 팔화(八花)는 팔음(八音)을 상징하고, 화엄의 유(乳)는 없애고 36화(花)를 안배함은 삼귀계(三歸戒)를 옹호하기 위한다는 36선신(善神)의 상징이라는 신종의 법기(法器)를 주장하는 해석 등이 있어 왔다.
민가로는 쉽게 종을 주물하는 당시 어미들에게 아이를 바치게 해 넣었다는 설화가 전하며, 종을 칠 때마다 "에밀레 ~" "에밀레 ~" 운다고 하여 봉덕사종 외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샤파, 샤파도, 떼아도의 깔레라, 샤다리를 통하여야 하늘의 갈라 별을 보았도다

꾸에브ㅏ, 뚫넬, 꾸에르다, 골ㅁ, 아튜르, 아술라, 고을, 고르게의 까피딸 깔데라 검붉은 지하 농경지 돌리네 뻬르세(페르세포네, 코리)로 이어진 이스타의 머리 혹은 꼬리 그 갈라

끌베이(깔베이, 껄베이) 을화 불러바의 떼끄논(τέκνον)들은 '오르코도메오', '아키테크'에 정당한 댓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나?

크로노스, 뽈리스 불국정토를 빠사따 그리고 가이야를 떠나기까지 파사트

(고대 그리스어)

τέκνον [떼끄논]

1.부모와의 관계에서 자녀, 아들

2. 스승, 사도, 교사, 영적, 정신적 자녀

3.아이.

παιδίον [파이디온] 어린아이, 유아, 소년 소녀

τεκνογονέω[떼끄노고네오 tĕknŏgŏnĕō] : 자녀를 낳다.

φιλότεκνος[필로떼끄노스 philŏtĕknŏs] : 자녀를 사랑하는, 아이를 사랑하는,

cf) gorga[고르가] 1.매사냥 새들을 위한 먹이, 2.소용돌이

gorda[고르다] gordo 1.비만한 2.커다란 3.지방질이 많은

gorge[고르게, 고르지, 골지] ; gor·geous

게걸스레 먹다; 배불리 먹다; 실컷 먹이다; 가득 채우다, 틀어막다

① 골짜기(ravine).
② 古·문어》 식도(食道)(gullet), 목구멍.
③ 築城〗능보(稜堡)·외보(外堡)의 뒤쪽 입구.
④ 왕성한 식욕; 배불리 먹음; 탐식, 포식; 삼킨 음식물.
⑤ 메스꺼움; 불쾌; 분통, 원한.
⑥ (시냇물·통로 등을) 막는 방해물.

아스달 아스의 쿵 푸세, 꼰 퓌, 공부는 그 또한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

불국사(佛國寺)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대인 751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774년에 죽자, 나라에서 이를 맡아 완공하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이 전한다.
다보탑 및 삼층석탑이 보인다. 백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불국사 석탑 제작에 참가하기 위해 신라로 와 있던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이 전한다.
김대성은 죽여버린 곰이 꿈에 나타나자 용서를 구하고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흰 화강암을 또개어 불국사와 석굴사를 지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대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김대성은 죽여버린 곰이 꿈에 나타나자 용서를 구하고 극랄왕생을 빌기 위하여 불국사와 석굴사를 지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 " 내 국가유산청)

▷ 泥師今, 尼師今, 尼斯今, 泥斯今

신라 고유의 군주칭호. 남해 차차웅(타타웅) 유리 이사금부터 3~16대에 걸쳐 약 330~390여 년 동안 사용되었다. (리우리 이사금은 남해 차차웅-타타웅과 이사금 표기 또한 첫 글자의 발음은 '니'인데 현대 한국어 두음법칙으로 '이사금'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

본래 泥는, 누(루), (무)늬, 와도 같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승 니(이), 말릴 닐(일) 뜻 글자. 유리 이사금의 휘가 세상을 뜻하는 (온) 누리, 루리 인 것도 무관하지는 않은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진흥왕의 왕비 사도부인의 가계들이 풍월주(이후 화랑)과 같이 옥진궁주, 묘도궁주 등의 지칭을 이어 쓰고 있으며, 여성이 그 지휘관으로 공주까지도 역임했던 풍월주의 직책에 대하여 이후 화랑들이 여성 호선의 화장과 타투를 했던 전래 등도 같이 주목해 볼 만하다.

참고로, 유리 이사금은 남해 차차웅 (지위 겸 이름)과 우ㄴ디, 운제(雲帝)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태자였다. 운디[u-n di]부인은 경주 이씨로 전한다. 꾸물라 혹은 굴암 등에 대한 표기가 아닌 우ㄴ으로 표기된 것을 지적해 둔다.

다만, 이후 신라 왕실은 아들을 얻지 못하면 사위로 하여금 군주의 자리를 잇게 하던 관습을 폐기하고 딸로 하여금 그 자리를 잇게 한 최초의 여왕이 진평왕의 딸 성덕여왕이며, 이후 진덕, 진성 여왕으로 이어진다.

그 외, 고리 고조선이 한나라에 밀려 성쇠를 다한 뒤, 초기 삼한 도시 공국화 되는 남반부 진한의 땅에서, 소블도르ㅣ로부터 박혁거세, 차차웅, 이사금, 변한 등지와 가야 김씨(김수로왕 이후 김유신)까지를 아우르며 내물 마립간으로 이어지는 고대국가 신라의 성립 및 그 지도부 왕실과 전개에 대하여도, 아래 간략한 참고글 외, 다른 기회들을 보아 필자 류임현의 관련된 이론들과 같이 좀 더 밝혀 기재하기로 합니다.

참고로, 마한 지역의 백제로 넘어가게 된 가야의 잔존 왕족 세력들도 백제 왕실에서도 존속된 것으로 확인 되는데, 결국 가야 김씨의 아버지와 자식들이 국가가 나뉘게 된 것이다.

사실상 돌무덤이 아닌 신라 식 드라곤의 용분의 드라릉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왕릉은, 가야 식 왕릉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경북 경주시 황남동에 위치한 대릉원은 일대로 제13대 미추왕릉과 거대한 표형분(쌍분)의 황남대총, 고분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천마총 등이 집결되어 있는 고분유적지로, 미추왕릉의 경우 댓잎군사 설화 또한 전한다.

; 미추왕릉은 현재 봄날 벚꽃놀이 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앞 서는 댓잎군사 설화가 전한다. 신라 초기 인근으로 잔존하고 있던 이서국(伊西國)에서 신라를 침입했는데, 이 때 머리에 댓잎(대나무잎)을 꽂은 군사들이 몰려와 그들을 물리쳤고 전투가 끝난 뒤 그 군사들에게 꽂혀 있던 댓잎들이 미추왕의 무덤 앞에 소복이 쌓여 있었다. 이에 사람들은 그 후 미추왕릉을 별칭으로 ‘죽장릉’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풍월주(화랑)와 사도는 불교에 앞 서 그 제례 및 종교행사에 대나무를 활용한 계열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왕씨가 왕이 되는 고려시대를 이어 근현대 초기까지도 무당, 점술가들 중에도 그 집에 대나무를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청도 운문사(雲門寺)에 예로 전해 오는 ≪제사납전기(諸寺納田記)≫에 이르기를 노례왕 14년(37년)에 이서국(伊西國) 사람들이 와서 서라벌 금성(金城)을 쳤다는 것. “정관(貞觀) 6년 임진(壬辰)(632년) 이서군 금오촌(今郚村) 영미사(零味寺)의 납전(納田)이다.”

금오촌은 지금의 청도(淸道) 땅으로, 청도군은 즉 옛날 이서군이었던 것.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었던 진한 소국의 하나였던 이서국은, 진한 지역의 한 국가 샤르국, 즉 사로(斯盧)국의 대외팽창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던 2세기 초엽에 압독국 등과 함께 샤르국 신라에 병합되었다. 위 사건은 그 잔존 세력들에 의한 것이다.

각 성씨 등 외, 도시 국가들의 지배지도층들의 제례 및 신앙, 민가의 주요 풍속과 관련 세력이 섬세하게 나뉘는 과정 뒤 사로국 신라의 번성과 같이 향방을 달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왕은, (결국) 백제까지 함락시켜 삼국통일을 이룬 태종무열왕이다.

황남대총은 두 개의 고분이 쌍봉낙타의 등처럼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가장 큰 고분이며, 황남대총과 멀지 않은 곳에 천마총이 있다.

천마총의 천마도는,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타고 다닌다는 말이 지상에 내려온 듯 한 경쾌한 천마의 그림이다. 말다래에 그려져 있던 ‘천마도’가 천마총에서 발굴된 것이다.

경주국립박물관 전시실 내의 동궁과 월지의 모형도.

아래 기재한 " "의 부분은 국가유산청의 글이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과 오리 압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렸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고 삼국 통일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지는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 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 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보상화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 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동궁에는 임해전을 비롯해 총 27동의 건물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현재는 3채만 복원되었고 그 건물을 비추는 화려한 조명과 월지에 반사된 모습은 경주의 대표 야경명소로 뽑힌다."

현재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노서동과 황남동에 있는 신라 고분군. 대릉원.
규모 외 돌무지덧널 등으로 추정컨데 롱, 즉 드라곤 용 혹은 샨 만디를 표상화 한 릉인 듯.
잠든 듯 평온하게 붉은 피도 씻겨 지켜야 되는 시신.
곤으로서 샤카 치세하였던 곤룡(포) 족의 전례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리움만이 아닌, 올까봐 후한도 더 두려워하여 뫼시는 드라 릉.


튬(둠), 아스카 묻엄(무덤)의 선문 뀌스-(quis-) 프레군따(preguntar)로서 순장의 흔적이나 규모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신라 릉은 그 규모 외 돌무지덧널 등으로도 추정컨데 그 또한 큰 비 온과 물과도 연관된 커다란 롱, 즉 드라곤 용 및 샨 만디를 표상화 한 릉인 듯.

잠든 듯 평온하게 붉은 피도 씻겨 지켜야 되는 시신.

곤으로서 샤카 치세하였던 곤룡(포) 족의 전례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절대 그리움만이 아닌, 올까봐 후한도 더 두려워하여 뫼시는 드라 릉.

(인간적으로는 솔직히 드라-꿇라를 누가 얼마나 그리워, 해야 해요?

용의 치적, 용의 역린 등, 그 또한 오르 띠의 사명에 대한 것 등은 다른 기회에 논하도록 합니다. 현세 일반인들과 쉽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판단.)

사진의 위 왼쪽부터 죽현릉(竹現陵)․죽장릉(竹長陵) 미추왕릉 및 릉의 내부 관람이 가능한 천마총.
사진의 아래 왼쪽부터 돌무지덧널무덤·쌍무덤 황남대총 및 대릉원 전경.


(황룡사) 망새. 치미(鴟尾).
솔개의 꼬리를 뜻하는 치미. 높이 1.82미터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치미 중 가장 크다.


치미(鴟尾)는 솔개 꼬리라는 뜻으로 기와지붕의 용마루 양 끝에 얹는 장식물이다.

​동아시아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이지만, 그중에서도 신라의 치미는 일반적으로 장엄하고도 상징적으로 해석된다. 솔개로 쓰고 있으나 본래 전설 상의 새인 펑 봉황의 그 꼬리의 형상이다.

용과도 대적하는 용과도 같은 새 혹은 전설 상의 물고기로, 불을 막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길상과 벽사의 기능에서 출발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점차 왕권과 종교적 신성함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봉황의 머리 부분이나 날개깃, 물고기의 꼬리 같은 모양을 하고 하늘로 향하고 있는 형상으로 보이며, 용을 잡아먹고 산다는 전설상의 새 혹은 물고기의 꼬리 형상이라는 것.

참고 >닻 모양의 청동 쌍방울.

필자 류임현의 연구로서 자리매김하여 판단하건데, 더 앞 서 전래 내려온 골해의 코리 혹은 고레 고리의 배 베이 무구 흔적의 또 다른 한 형태로 보인다.


경주 동궁 월지에서 발견된 주령구.
필자 류임현의 이론으로 자리매김하여 판단컨데, 원시 샤카 사먼으로부터 전래하는 당글랑 주렁주렁 즉 무구의 일종인 다령 다면의 주령구를 신라 동궁의 귀족들은 주령구(酒令具)로 바꿔 부르며 14면체의 주사위를 굴리며 도박의 일종인 주사위 게임으로 논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앞 서는 운명적 죽음 등의 순 번을 결정하는 픠움 훈구로서의 '다이스' 뇰음까지는 아닌, 점차 귀족들끼리 심심파적 삼아 각종 벌칙을 기재하고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한 장난스런 놀이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팔을 구부리고 술을 마시기 (러브 샷 하기), 소리 없이 춤추기, 술 마시고 큰 소리로 웃기, 등.




경주첨성대(慶州瞻星臺)는 경주시(慶州市) 반월성(半月城) 동북쪽에 위치한 천문대이다. 7세기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지시로 축조된 천문 관측대이다.

APEC을 앞 두고 첨성대의 다양한 미디어아트가 선보였다.

경주첨성대(慶州瞻星臺)는 경주시(慶州市) 반월성(半月城) 동북쪽에 위치한 천문대이다. 7세기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지시로 축조된 천문 관측대이다.

APEC을 앞 두고 첨성대의 다양한 미디어아트. 천마도가 미디어아트로 밝혀졌다.

경주첨성대(慶州瞻星臺)는 경주시(慶州市) 반월성(半月城) 동북쪽에 위치한 천문대이다. 7세기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지시로 축조된 천문 관측대이다.

APEC을 앞 두고 첨성대의 다양한 미디어아트.

경주는 불국사 외, 김대성이 곰을 죽인 뒤 꿈에 나타나자 각성하여 지은 동해 용문, 성문의 토함산 석굴암(본래 석굴사) 또한 위치해 있으며, 수도승 불교 전파에 대한 그 공인 국가로서의 수도로도 전개 되었다.

경주첨성대(慶州瞻星臺)는 경주시(慶州市) 반월성(半月城) 동북쪽에 위치한 천문대이다. 7세기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지시로 축조된 천문 관측대이다.

골품제 아래 신라의 왕실은 대체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그 가운데에서 진평왕의 딸 성덕여왕의 가계는 대체로 마립간 계열로 볼 만 하다. 다만, 이후 진성여왕, 진덕여왕과 달리, 그 호칭만으로도 성덕여왕이라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다만, 여왕은 주변 호족까지에 대하여 '니사금'의 전래를 상기시키며 권위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별의 관측 목적은 크게 두 가지 등으로 대별 가능한데, 하나는 국가의 길흉(吉凶)을 점(占)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법(曆法)을 만들기 위해 일월오성(日月五星)의 운행을 관측하는 것 등이다.

사실상 삼신 설화로 전래되는 것과도 대조하여, 점차 후사, 후예, 후계자를 얻기 위한, 중대한 합궁의 날짜를 정하는 등 각종 중대한 일자를 지정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천문의 관측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외 중요 이유로 기변, 농경사회로의 진척과 항해술 등과도 같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첨성대는 경주에 있는 것으로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국보)

첨성대는 네모형의 받침대 위에 큰 벽돌처럼 다듬은 '화강암'을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허리가 가는 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여왕은 주변 호족까지에 대하여 "니사금"의 전래를 상기시키며 권위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맨 위에는 사각형의 틀을 두겹으로 올린 것은, 그 위에 여러 가지 천문 관측 기구를 놓고 별의 운행을 관측한 것으로도 추측되고 있다. 밑받침대는 한 변이 6m이며, 각 변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으며, 밑받침의 중심부는 몸체의 중심부와 일치한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이용하였다.

▷ 샤다리(사다리) 관련 호모 까락떼루스 언어 종족의 전개 용어를 간략히 기재해 둔다.

스페인어

cal

calera [깔레라] 소형 고기잡이 배.

es-calera

1.계단

2.사다리

3.이발이 서툴러 층이 지고 어룽더룽하게 깎은 머리

chapa [샤빠] 얇은 판자, 금속 마개, 경찰관의 배지

chapa 철판, 판금, 나무판자, 판자, 널빤지, 널판

chaparrón 소나기, 풍부함

chapado 댄, 붙인, 도금된

chapado a la antigua옛 선조의 풍습에 집착한

chapalear물을 철벙거리다, 철벙철벙 물소리를 내다

chapalele차빨렐레

chapaleo(=chapoteo)

cachapa옥수수 빵

scāla [스깔라]

1.(주로 복수)사다리; 계단, 층계.

2.(집의) 층

3.(계단의) 단, (몇) 계단(Mart.).


scaláris

1.사다리의, 층계의, 계단의

2.(원형극장의 관람석으로 올라가는) 계단.

독일어

Leiter

1. 여성형 명사 사(닥)다리

2. (사닥다리 모양의) 건초 마차의 양쪽의 틀

3. 음악 음계 (=Tonleiter)

Staffelei

1.(südd.) 사다리.

2. 회화 화가(畫架).

프랑스어

échelle

1. 사다리

2. 여성형 명사 등급, 단계, 층위

3. [음악] 음계 (=échelle des sons)

degré [dəgʀe]

1. (사다리·계단 따위의) 단,[구어] 계단 (=marche)

2. (상태·성질 따위의) 정도

3. (사회적인) 신분, 계급,(군대의) 계급

노르웨이, 스웨덴

stige

Stege

영어

ladder

중국어

梯 [띠, 티] , 梯子[띠즈]

1. 사다리. 계단.

2. 계단[사다리] 모양의 것.

3. (사다리를 타듯이) 높은 곳에 오르다.

步步高 [부부까오]

1. 사다리. (=梯子)

2. (판자로 만든 2,3단의) 선반. 다락.

3. 백일초.

경주첨성대(慶州瞻星臺)는 경주시(慶州市) 반월성(半月城) 동북쪽에 위치한 천문대이다. 7세기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의 지시로 축조된 천문 관측대이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사다리가 사용되었으며, 3층으로 구성된 내부에서도 사다리가 용되었다.


공원으로 가꿔져 있는 첨성대 주변 전경.


대릉원 고분군 전경.


경주 불국사 반야 연지. 해탈교.


경주 불국사 반야 연지. 해탈교.


경주 불국사 반야 연지는 서양으로 전래된 아치교 등에서 밤에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반니의 반시(Banshee)가 출몰한다는 계열 설화에서의 그 반시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으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반시(半屍), 아일랜드의 여성 정령(Bean Sídhe) ; 얼어 죽은 반니가 아니었을까?

물 가 반야 연지.

경주 불국사 반야 연지. 해탈교.


▷ 만수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는 만주스리(Manjusri)라 하고 문수사리(文殊師利) 혹은 만수사리(曼殊師利)라고 번역되며, 줄여서 문수 또는 묘길상(妙吉祥)이라 부른다.

문수보살은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 등장하는데 특히 반야부(般若部) 경전에서는 언제나 반야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지혜의 보살로서 묘사된다.

현재 역의 만세는 '萬歲曆'으로 쓰는데, 卐이 트리스켈리온과는 역 방향인 것과도 무관치는 않은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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