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된 옛 왕조 수도 만달레이까지 15시간 차로 평소 2배 시간

...미얀마 대통령 권한대행 국가행정위원회 위원장 민 아웅 흘라잉의 압살사태 이후 최대 피해

미얀마 핵심 반군, 강진에 한달 휴전 선언 vs. 군정은 "작전 계속"

형제동맹 "인도적 지원이 우선" vs. 군정 수장 "휴전 아닌 공격 준비"

불교 중심지 사가잉 피해 정도 집계도 되지 않아...언론과 구호대 및 인도적 지원도 군정이 통제

...2007년 군정을 향한 반정부 시위 '사프란 혁명' 지역

민주 진영 임시정부 국민통합정부(NUG)와 소수민족 무장단체 반군 지역

대홍수 당시도 구제 통제 시민들만 눈문 흘리는 상황 호소

...인간성 상실 군사정부의 정권 장악에만 혈안 비난 들끓어

여진에 기자 투숙 호텔서도 '대피령'…'반군 장악 진앙' 사가잉 취재도 불가능

참상 숨기는 군정에 대한 주민 불만 커져…"군정은 권력 유지에만 혈안"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및 판매 금지]

7.7 규모 강진으로 미얀마가 초토화된 가운데 군사정권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이끄는 핵심 반군이 군사 작전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군정은 이를 휴전이 아닌 공격 준비라고 주장하며 반군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 미얀마 내전 :

미얀마의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국부로 칭송받는 아웅 산의 딸이자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가 정치인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웅 산 수치 여사로도 알려진 미얀마(이전 명칭 버마)의 내전은 민족 종족 차이와 종교적 갈등까지를 내포한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사실상 군부와 민간 정부 및 권력 다툼 성격도 짙다.

1948년부터 미얀마에서는 각 소수민족의 분란전이 진행되었으며 대표적인 주요 반란 세력은 버마 공산당과 카렌족이다. 20세기 들어 여러 여러 민족 단위의 무장단체(EAO)들의 영향력과 통제력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했으며, 이 중 가장 큰 민족반군 세력은 1962년 네 윈의 쿠데타 이후 군부에 대응하여 형성된 카친 독립군(KIA)이다.

영국 유학에 돌아온 수치는 버마를 일당 통치하던 사회주의계획 당에 다원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1990년 5월 총선의 실시에 이르며 결국 2016년부터 미얀마의 실질적 국가원수인 국가고문 겸 외교부 장관이자 소속 정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의 의장 겸 사무총장에 역임하게 되었으나 그 과정 또한 결코 만만하지는 않았다. 군사정부의 대량 살상과 가택 연금등 세계사에서 일반적(?)인 이루 말 할 수 없는 갖은 탄압이 이어졌다.

2016년 3월 15일 수지가 이끄는 NLD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틴초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수지는 외무부 장관과 대통령 대변인을 겸직하게 되었으며, 중국 외교부장(외무장관) 왕이와 제일 먼저 회담해 미얀마에 급격한 외교 노선의 변화가 없을 것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수감된 학생운동가들의 석방을 추진하거나 차별이 우려되었던 소수민족에 자리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녀는 옛 명칭 버마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만에 가까웠고, 아웅산 수치에게 정권을 이양하면서도 결코 군부 장악을 포기하지 않은 군사 세력들의 국교 불교를 이유로 삼은 모순된 소수민(종)족 말살 정책을 전적으로 저지 하지는 않았고 정부의 수장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대신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16년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NLD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모양새로 군부 장악에 그쳤던 민 아웅 흘리앙은 결국 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 산 수치의 국민민주연맹이 크게 승리하고 문민통제에 관한 헌법 개정 움직임이 일자 휘하 병력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미얀마를 장악했다.

사실상 그는 로힝야 난민 사태 당시 로힝야족을 말살하려 한 실질적인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이에 미얀마 국민들이 군부 재집권에 반발하여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고, 민 아웅 흘라잉은 앞 서 역대 군부 독재자들과 같이 군 병력을 동원해 유혈의 무력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짧으나마 민주주의 정권의 가능성을 경험한 미얀마의 국민들은 군부의 유혈진압에 예전처럼 손쉽게 굴복하지는 않았고 결국 이들은 직접 무기를 들고 민중들을 잔인하게 살육하던 미얀마군을 공격하고 살해하고 저항하면서 점차 미얀마는 민 아웅 흘라잉의 군사 정권 vs. 민주 반정부군 세력 사이 내전으로 비화되게 된 것이다.

2021년 5월 들어서는 민 아웅 흘리앙의 군사정권이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카렌족 해방군, 카친 독립군 같은 아웅 산 수 치를 지지하는 반군 단체들의 공세가 매서워졌으며, 5월 6일에는 카친 독립군에 의해 미얀마군 헬기가 격추되는 참사가 일어났고 시민들까지 시민군을 조직해서 맞서 나선 것이다. 더더우기 영관, 위관 등 높은 계급의 장교들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군부의 군인들마저 탈영해 시민군에 합류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시민군이 또한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군경을 상대로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정부와 손잡은 카친 독립군, 카렌 민족해방군 같은 반군과의 전투에서도 민 아웅 흘리앙 군사정권은 연패를 거듭하며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고, 그의 고향인 다웨이에서마저 민심을 잃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21년 8월 1일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스스로 총리가 되었음을 선포했고, 사실상 저항 세력의 반발은 더더욱 거세졌다.

시민 방위군과 소수민족 반군들이 게릴라 공세를 펼치고 진압군들이 오히려 수세로 몰렸으며 서북부의 통제권을 소수민족 반군들 및 민주 진영의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들이 서서히 장악하기 시작했고 더는 ASEAN 국가들도 점차 지지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반군의 강력한 저항이 현재까지 몇 해를 넘기며 계속 이어지고 있고 서방의 냉대도 계속되자 그는 2023년경 러시아와의 군사·안보 부문 협력 강화에 나섰다. 일본 전범과 자본 세력들외 한국의 포스코 및 대우 관련 지원설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다만, 최근 중국과 미얀마 사이는 다소 냉각되었다고 소식통들이 전하고 있으며, 민 아웅 흘라잉이 직접 반군이 중국산 드론을 사용하고 있는 점을 거론하고 나서면서 중국은 암묵적으로 반군을 더 지원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내전에서 지속되는 학살로 인해 ICC는 그에 대하여 전범 혐의의 체포영장을 발령했다. 현재 집권중인 세계지도자들중 3번째다.

그 또한 미얀마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본인이 전륜성왕에 준하는 존재로 언론플레이하거나, 점성술에 따라 자신의 생년월일이 전임 장군들에 비해 더 전륜성왕의 특징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때로는 불교 문화권의 성스런 흰 코끼리가 자신의 집권 기간에 발견되었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는 식이다.

전륜성왕 : 인도 신화속 개념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로도 전파된 편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짜(까)끄라와(바)르띠 라(하)자(cakravarti-rāja), 즉 '바퀴를 굴리는 왕'으로 표현한다.

민 아웅 흘라잉 일당 군부 독재정권과 싸우는 미얀마 반정부군.

미얀마 반정부군의 군사 훈련 모습.


2일 로이터통신과 미얀마나우 등에 따르면 소수민족 무장단체 연합인 '형제동맹'은 지진 구조 지원을 위해 한 달간 방어 활동 외에 공격적인 군사 작전을 중단하겠다고 전날 밝혔다.

형제동맹은 성명을 통해 "지진 피해자들에게 즉시 필요한 인도주의적 노력이 가능한 한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뤄지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 타앙민족해방군(TNLA), 아라칸군(AA)은 2023년 10월 말 형제동맹을 결성하고 중국과 접한 북부 샨주에서 합동 작전을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과의 국경 무역 요충지와 미얀마군 기지 다수를 점령하는 등 샨주 영토 대부분을 장악했다.

이후 민주 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 산하 시민방위군(PDF)과 다른 지역 무장단체들이 가세해 총공세를 펼치면서 군정은 수세에 몰렸다.

형제동맹에 앞서 PDF도 지진 피해 지역에서 2주간 방어를 위한 반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 활동을 중단하겠다며 지난달 30일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군정은 반군 측의 휴전 선언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군정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전날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모금 행사에서 반군이 교전 중단 기간을 이용해 부대를 재편성하고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일부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현재 전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지만, 병력을 모아 훈련하며 공격을 준비 중"이라며 "이 역시 침략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미얀마군은 필요한 방어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얀마군은 지진 이후 반군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전날에도 샨주, 마궤주 등 각지에서 미얀마군 공습과 드론 공격 등으로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8일 발생한 강진으로 현재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와 옛 왕조의 수도이자 현재 제2의 도시 만달레이의 건물과 각종 시설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붕괴한 건물 잔해에 깔렸다.

군정 발표 기준으로 사망자가 3천명에 육박하는 가운데에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군정은 이례적으로 국제사회에 원조를 요청했지만, 반군 통제 지역에 대한 접근은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정이 이번 참사를 저항 세력을 약화하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과 비판도 나오고 있다.

30일 미얀마 만달레이의 구조대원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잔해에서 사고 수습 작업을 하고있다. (사진 :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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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 유치원 (짜우세)

미얀마에서 28일(현지시간) 7.7 규모 강진이 발생하면서 미얀마 중부 짜우세시에 있는 2층 규모 유치원 건물이 무너진 모습.

마을 주민 아웅첸미(30)씨는 "어린이 70명 정도가 다니는 곳"이라며 "사고가 나고 동네 주민들이 모여서 구조 작업을 펼쳤는데 교사 1명과 급식 조리사 1명, 유치원생 13명이 숨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25.3.30

-아래-는 연합뉴스와의 전제계약된 기사로 현재 특파원들의 작성 그대로 게재합니다.

(양곤·짜우세·만달레이·네피도[미얀마])

"이거 어쩌죠. 만달레이로 가겠다는 차가 없어요. 다시 조금 찾아볼게요."

지난달 29일 미얀마 양곤으로 들어가기 위해 태국 방콕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양곤에 있는 한인 여행사와 통화할 때부터 이번 출장이 쉽지 않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미얀마 중부를 강타한 규모 7.7의 강진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미얀마로 급파됐다.

지진 직격탄을 맞은 미얀마 마지막 꼰바웅 왕조의 수도 만달레이의 참상을 직접 보고 기사화하기 위해서다.

평소 같으면 방콕에서 곧바로 만달레이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었지만, 지진으로 만달레이 공항이 폐쇄되면서 미얀마 최대도시인 남부 양곤에서 차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진이 계속된다는 소식에 미얀마 운전기사나 가이드 등 누구도 만달레이행에 선뜻 동행하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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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층 아파트가 6층으로 (만달레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3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 무너져 내린 스카이 빌라. 11층 건물이 주저앉으면서 6층만 남았고 90여명이 매몰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025.3.31

◇ 15시간 걸려 만달레이로…초토화된 옛 수도

어렵게 차와 가이드를 구해 30일 새벽 5시 양곤에서 만달레이로 출발했다. 평소 8시간 거리였지만 가이드는 최소 12시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걸린 시간은 15시간으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양곤에서 수도 네피도를 지나 만달레이에 가까워질수록 고속도로 일부가 부서지거나 아예 끊긴 곳이 많았다. 그때마다 도로를 우회하며 북쪽으로 나아갔다.

만달레이에서 남쪽으로 40㎞ 정도 떨어진 짜우세에 도착하자 지진의 참혹한 피해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세 집 건너 한 집이 무너졌고, 3층짜리 상가 건물도 주저앉았다.

약 70명의 어린이가 다니던 유치원이 무너지면서 10여명의 아이가 숨진 현장도 나타났다. 사고 현장에는 어린이 가방과 교재, 신발, 놀이기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있어 끔찍한 당시 상황을 보여줬다.

여진도 계속됐다. 밤사이 여진이 시작되자 숙박하던 호텔 직원은 방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호텔 측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층마다 직원들을 밤새 대기시키고 있었다.

날이 밝고 지진 후 첫 월요일을 맞은 만달레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바쁘게 출근하는 시민들로 가득한 여느 동남아 도시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걸음만 다가가자 초토화된 도시가 모습을 보였다. 무너진 학교와 병원, 호텔, 아파트, 주택이 곳곳에서 흉물처럼 쓰러져 있었고, 사원과 옛 왕궁도 파괴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참혹한 현장 옆에는 자리를 뜨지 못하는 유가족들이 있었다. 건물이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수십명이 매몰됐지만 장비가 없다 보니 매몰자를 꺼내지 못 해 유가족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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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 (만달레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3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 있는 한 관공서 공터에 주민들이 모여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2025.3.31.

◇ 언론도 구호단체도 진입 금지…방치된 '진앙' 사가잉

전 세계 언론이 만달레이의 비극을 전할 때 정작 진앙인 중소 도시 사가잉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사가잉은 미얀마의 젖줄인 에야와디강을 사이에 두고 만달레이에서 서쪽으로 약 20㎞ 정도 떨어진 인구 약 30만명의 불교 중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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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통제에 구호 차단…'반군 장악지' 진앙 참상 '깜깜이'
[연합뉴스 촬영. 재판매 및 DB 금지]

하지만 사가잉의 피해 정도는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미얀마는 민주 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와 소수민족 무장 단체들이 군정과 무장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가잉은 반군이 장악한 곳이어서 언론은 물론 구호대나 인도적 지원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군정에 의해 통제됐다.

군정이 1일까지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3천명에 육박했다고 했지만, 실제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사가잉 지역 피해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얀마 군정은 지진 이후에도 사가잉 지역을 폭격하기도 했다.

목선을 타고 에야와디강을 건너 사가잉 한 마을에 생수와 식품 등 생필품을 전달한 교민 김모 씨는 "마을 한 곳의 피해 정도를 들었는데 대충 세어 봐도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였다"며 "만달레이보다 완파된 집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생수를 들고 가서 나눠주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사고가 날 뻔했다"며 "물이 없다 보니 아이들이 빈 생수병으로 강물 물을 떠다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얀마 군정은 외신 기자들의 취재 허가를 거부하는 등 사고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도 사가잉 지역 취재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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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갈라진 아웅산 장군 동상 계단 (네피도=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1일(현지시간) 미얀마 수도 네피도 시내에 있는 아웅산 장군 동상으로 향하는 계단이 지진으로 갈라져 있다. 2025.4.1

◇ 통제된 수도 네피도…사진 찍자 경찰 제지

지진은 수도 네피도도 피해 가지 못했다. 다만 군정의 심장부인 만큼 주요 시설에서는 빠른 속도로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 청사와 의사당 등으로 이어지는 네피도 상징 야자 타니 대로도 지진으로 균열나 있었다. 하지만 갈라진 틈을 모래로 급히 채워 놓은 상태였다.

네피도 시내에 세워진 미얀마 국부 아웅산 장군 동상이나 네피도 분수 공원 등 유명 관광지에도 지진으로 파손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다만 기자가 이 현장을 사진으로 찍으려 하자 경찰은 호각을 불며 사진찍지 말라고 제지했다.

현지 가이드는 "미얀마 군부 입장에서 네피도가 지진으로 파손됐다는 것을 외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네피도에는 CCTV가 많으니 차에서 내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차에서도 너무 대놓고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네피도는 2005년 미얀마 군정이 전격적으로 수도를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곳으로 이후 왕복 20차선 도로나 화려한 의사당, 대통령궁, 관청 등이 들어선 곳이다.

하지만 급하게 도시를 만드느라 아직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2021년 쿠데타로 재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외국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군부가 워낙 삼엄하게 주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시라 '동남아의 평양'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자가 네피도에 입성할 때 총을 든 군인과 경찰의 검문을 여러 번 받았고, 그때마다 현지 가이드는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사용하지 말고, 영어나 한국말도 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 군인에게는 "군 관련 업무로 왔다"는 식으로 둘러대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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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수색하는 미얀마 시민들 (만달레이=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31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주민들이 무너진 주택 안을 살펴보고 있다. 2025.3.31.

◇ 들끓는 민심…"군부는 인간성 상실"

미얀마 현지 시민들과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이들의 마음은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봤다는 슬픔만큼 군정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가득했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는 어느 나라보다 기부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정부에 기부하면 군정이 그 돈으로 무기나 사고 실제 피해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모금하고 이 돈으로 직접 물건을 산 후 현장에서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만달레이에서 대학을 나와 양곤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A씨는 친구,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 직장이 있는 양곤에서 차를 구해 물과 식량 등을 가득 싣고 만달레이로 향했다.

그는 "내가 직접 구호품을 사다 전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만달레이 주민 사이에서는 미얀마 군정이 이번 사건을 오히려 반군 퇴치의 기회로 삼고 기뻐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가잉은 반군이 점령한 곳이고, 만달레이는 2007년 군정을 향한 반정부 시위인 '사프란 혁명'을 일으킨 지역이다.

만달레이 주민 B씨는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에 대해 "그는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만달레이와 사가잉 사람들이 죽은 것을 좋아할 것이다"라며 "그는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에서 만난 대학생 C씨도 "군정은 지진이든 홍수든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자기들이 권력을 오래 잡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다"며 "시민들만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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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으로 초토화된 만달레이 인근 짜우세 시 (짜우세[미얀마]=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미얀마에서 28일(현지시간) 7.7 규모 강진이 발생했다. 사진은 큰 피해를 본 만달레이시 인근 짜우세시 30일 모습. 2025.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