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사육장' 백사자들의 7년만의 이사...태어나 처음으로 보게되는 실재의 하늘이라는 것

류임현 기자 승인 2024.06.18 02:40 의견 0

7년만의 지하 탈출 백사자 '우렁찬 울음'…야외 방사장 들어서자 거칠것 없었다

네이처파크, 영업중단 대구 테마파크에 남겨진 동물들 속속 구조

'진짜 하늘이 궁금해'…폐업한 동물원에 남겨진 백사자 17일 대구 수성구 한 실내 동물원 사육장 안에서 백사자 한 쌍이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 동물원은 지난해 5월 영업을 중단했다. 이곳의 백사자 한 쌍은 이날 대구 달성군 스파밸리 네이처파크 동물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2024.6.17


"사자야, 이제 푸른 하늘 마음껏 보면서 더 행복하길 좋겠어"

17일 오전 10시께 찾은 대구 수성구 A 테마파크 동물원 내부는 동물들의 배설물 등으로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A 동물원은 코로나로 인한 경영난 등을 이유로 지난해 5월 영업을 중단한 이후 기니피그 사체와 동물 배설물을 방치한 점 등이 관계 기관 단속으로 드러나 과태료 300만원 처분을 받고 방치됐다.

지하 2층에 위치한 A 동물원은 최소한의 조명만 켜진 채였으며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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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채 방치된 동물원

17일 대구 수성구 한 실내 동물원 내부가 어지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육장의 더러운 유리창 너머로는 아직 떠나지 못한 동물들이 남겨져 있었으나 곳곳은 철거된 사육장에서 나온 쓰레기 더미로 방치돼 있었다.

사육장 안에 남겨진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유리창에 다가서자 날카롭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구조된 동물들이 있던 사육장은 배설물과 벌레 등이 쌓이며 몹시 지저분하고 불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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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물 가득한 사육장

하이에나가 있던 사육장 내 철제 케이지는 오랜 기간 방치돼 철로 된 바닥이 삭아 있었다.

동물 구조를 위해 이곳을 찾은 네이처파크 소속의 한 사육사는 "구조 당시 애들(하이에나)이 픽픽 쓰러지는 상황이었다"며 "너무 말라 있었고, 상황이 안 좋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폐허가 된 동물원의 중심부로 들어가자 백사자 사육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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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동물원에 남겨진 백사자

17일 대구 수성구 한 실내 동물원 사육장 안에서 백사자가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손때 묻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백사자 암수 한 쌍의 건강 상태는 절망적인 상태는 아니었으나 실내의 좁고 어두운 사육장 안을 연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백사자 사육장 유리창에는 '영남권 최초의 백사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백사자들은 지하 천장에 그려진 하늘을 묵묵히 바라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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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해줄게'

17일 대구 수성구 한 실내 동물원 사육장 안에서 백사자가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2개월 전 부터 이 동물원의 동물들을 돌봐왔다는 전 사육사 A씨는 "따로 불러주는 이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두 개체의 나이는 8살 정도이며 1살 때 이곳으로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평생을 좁은 사육장에 갇힌 백사자들은 수의사의 동행 아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을 시작했다.

네이처파크에 도착한 백사자 수컷은 철제 케이지 안에서 처음 만난 바깥세상을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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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으로 나온 백사자

17일 대구 달성군 스파밸리 네이처파크 동물원에서 직원들이 수성구 한 실내 동물원에서 이송된 사자를 야외 방사장으로 옮기고 있다.

해당 백사자는 대구 수성구 한 실내 동물원 사육장에서 7년을 지냈으며, 지난해 실내동물원이 폐업하자 이날 네이처파크 동물원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게 된 것. 2024.6.17

네이처파크 직원들이 백사자를 옮기는 동안, 백사자는 지하 동물원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우렁찬 울음으로 보는 이의 감동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자아내기도 했다.

마침내 야외 방사장으로 이동한 백사자는 초목에 첫발을 내디딘 뒤 잠시 주춤거리다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도착한 암컷 백사자를 만난 수컷 백사자는 당황한 듯 어지럽게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야외 방사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서 적응을 시작했다.

네이처파크의 사자 야외 방사장은 백사자들이 7년간 머물렀던 실내 사육장의 10배 이상 크기인 약 150평 규모다.

손인제 네이처파크 사육팀장은 "기존에 있던 사자 1마리와 이번에 새로 온 2마리를 교차 방사 방식으로 서로 인식하도록 할 것"이라며 "백사자 두 마리가 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사육사들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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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세상으로의 첫발

17일 대구 달성군 스파밸리 네이처파크 동물원에서 수성구 실내 동물원에서 이송된 백사자가 야외 방사장에 첫발을 내딛고 있다.

박진석 네이처파크 이사는 "이름이 없는 사자들인데,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이름을 붙여줄 예정"이라며 "사자 먹이 체험 등을 하지 않고, 건강 체크와 치료를 병행하는 등 큰 관심을 보내주신 만큼 잘 돌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백사자의 이동을 지켜본 이다운(31)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동물원 설립에 대한 기준과 관리에 대한 법이 좀 더 엄격해지고 동물복지를 위한 전반적인 환경개선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며 "(사자가) 이제 푸른 하늘 마음껏 보면서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네이처파크는 A 동물원에서 280여마리의 동물을 구조해 사육 중이다.

A 동물원에 남은 원숭이 17마리 등은 사육시설 지정 등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동시킬 예정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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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한 동물원에 남은 원숭이

17일 대구 수성구 한 실내 동물원 사육장 안에서 원숭이가 유리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명백한 동물학대에 대한 엄격한 판단은 현재 없는 가운데, 처음으로 실재의 하늘을 보게 된 백사자 수컷이 새로운 환경에서 푸른 풀들을 밟아 보고 있다.


명백한 동물학대에 대한 엄격한 판단은 현재 없는 가운데, 역시 처음으로 실재의 하늘을 보게 된 백사자 암컷이 새로운 환경에서 푸른 풀들을 밟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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