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거주중 (독립유공자) 최재형선생 후손 자택 보수...보훈부·KT노사 협업 첫 사례

류임현 기자 승인 2024.06.28 16:26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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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선생 후손 자택 개선 전과 후 [국가보훈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가보훈부와 KT노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거주하는 독립유공자 최재형 선생의 외증손녀 자택에 대한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최근 완료했다고 17일 밝혔다.

최재형 선생은 1860년 8월 15일 함경북도 경원(慶源)에서 부친 최흥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최재형의 어머니는 재색을 겸비한 기생이었다.

조선시대에 말하자면 차별의 표적지였던 (고려도 개성 인근 도) 서북지역에서 최재형의 부친 최흥백은 가난한 소작인으로 살았고 매우 낙천적이고 호방한 성격을 가진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최리의 낙랑국이 사위 호동왕자에게 속아 국가가 멸망한 뒤 최씨 왕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삼국시대부터 후삼국,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두뇌와 한문학 실력등으로 자수성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만큼 고려시대 무신 정권 이후로는 더더욱 차별로 낙후하기 그지 없던 서북지역에 태어난 최씨들의 운명은 자수성가 외 다른 선택지는 별반 없었다.


1869년 가을 부친 최흥백이 부인을 고향에 남겨둔 채 최재형과 형만을 데리고 훈춘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갔으며 지신허(地新墟)라는 한인마을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들은 말하자면 디아스포라 이주민의 삶들을 살게 된 것.

최재형 선생의 러시아 이름은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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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국가보훈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선생은 사업가로 자수성가를 했고 축적한 막대한 부를 항일의병투쟁 조국의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했다.

하르빈에서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단하러 떠나기 전 안중근 의사도 최재형의 집에 머물며 사격연습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의 여비를 보탰다고 한다. 일본의 첩보는 안중근 의사의 처자, 동생이 최재형 선생의 집에서 머물거나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고 보고했었다고 한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에 대한 기여로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도 추앙받았으며, 사실상 그로 인하여 1920년 '러시아 내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로 넘어온 일본군의 '한인학살 정책'의 만행으로 순국했다.

최 선생의 외증손녀 박릴야 페트로브나 씨의 집은 지어진 지 70년이 넘은 노후 주택이어서 천장에 물이 새고 바닥과 창호, 싱크대 등도 낡아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했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KT노사 임직원의 15명 가량이 바닥의 도배와 거실·현관 창호 교체, 외부 방범창과 방충망 설치 등 공사를 했다.

이번 사례는 민·관 협업으로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의 주거환경 개선을 추진한 첫 사례로, 국가보훈부와 KT노사는 앞으로도 이 사업을 추진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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