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전문 편의점·24시 무인 라면가게·'너구리의 라면가게'
'즉석 조리' 인기…관광객 위해 다국어 서비스·외국인 직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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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끓여보는 외국인들 (서울=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일 서울 마포구 CU 홍대상상점에서 열린 라면 수출 10억불 달성 기념 현장 간담회에서 외국인 참석자들이 직접 고른 라면을 조리하고 있다. 2025.2.15
지난 11일 '라면 라이브러리(도서관)'라 불리는 편의점 CU 홍대상상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봉지 라면 수백 개가 한쪽 벽면 진열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어 그야말로 도서관을 연상케 했다.
'감자면', '카레면' 등 일반 편의점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색 라면들도 이곳에선 쉽게 구할 수 있다.
매장 중앙에는 여러 종류의 컵라면 용기를 본떠 만든 대형 시식대가 마련되어 있다.
즉석 라면 조리기는 한강 공원 '한강 라면'처럼 바로 셀프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다.
외국인 방문객이 많은 만큼 조리기엔 영어부터 중국어, 일본어까지 다양한 언어로 사용법이 적혀 있다.
평일 낮인데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눈 앞에 펼쳐진 가지각색 라면에 '와우' 감탄사가 연신 터져 나오는 것이다.
수십 종류 라면이 들어선 대형 진열장에서 먹고 싶은 라면을 가져와 즉석 조리기에서 직접 라면을 끓이는 것이다. 물론 학교 앞 분식집의 주인 이모님이나 주방 아주머니는 없다.
셀프 라면이 끓으면 시식대로 직접 가져가서 라면을 먹은 뒤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각종 먹을 거리도 구비되어 있다.
수십 종류의 라면의 주재료인 밀은 각 라면마다 미국, 러시아, 호주, 이태리, 스페인, 터키, 동유럽, 중국 등 그 원산지도 다양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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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라면으로 할까 (서울=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편의점 CU 홍대상상점의 '라면 라이브러리'에서 한 외국인 손님이 라면을 고르고 있다. 2025.2.15.
◇ 즉석에서 직접 끓여 먹는 'K-라면', 외국인 관광객 '취향 저격'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라면 수출액은 2023년 대비 30% 증가한 10억2천만달러(약 1조5천억원)를 달성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K-콘텐츠의 인기를 타고 한식에 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 'K-라면' 수출 성장의 배경으로 꼽힌다.
K-라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선 즉석에서 라면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특별한 편의점이나 무인 라면 가게를 방문하는 것이 한국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BGF리테일은 2023년 11월 말 CU 홍대상상점에 '라면 라이브러리' 1호점을 개장했다. 개장 초부터 큰 인기를 얻어 현재는 전국에 8개의 라면 라이브러리가 추가로 운영 중이다.
CU 홍대상상점 라면 라이브러리를 방문하는 손님의 70~80%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즉석에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봉지 라면은 하루 평균 약 120개가 팔린다고 한다. 라면에 조리용 용기 구입비를 합하면 총 3천원 안팎이다.
이날 만난 싱가포르에서 온 20대 케이 씨는 "한국 라면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중에선 4가지치즈 불닭볶음면과 로제 불닭볶음면을 가장 좋아한다"며 "싱가포르에선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가격도 비싼데 한국에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어서 많이 사 갈 예정"이라며 웃었다.
그는 "라면 라이브러리는 처음 방문했는데 정말 멋진 것 같다"며 "직접 조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BGF리테일 관계자측은 "외국인 손님들은 라면을 직접 조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흥미로워한다"며 "단순히 물을 부어서 먹는 컵라면이 아닌 본인이 원하는 봉지 라면을 골라 직접 끓여 먹는 방식이 그들에겐 일종의 재미있는 경험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상 GMO, MSG 논란 속에도 라면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컵밥에도 이어 확실히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뜨거운(?) 맛보다 더한 한 끼 쉬운 '가성비'에 있을 것이다. 떼우 끼! 떼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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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 무인 라면 가게 (서울=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24시 무인 라면 가게에 봉지 라면들이 선반에 진열돼 있다. 2025.2.15. [촬영 김유진]
◇ 24시간 불 켜진 K-라면 가게…"한그릇 더 주세요!"
인근에 호텔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서울 중구의 24시 무인 라면 가게도 인기다.
호텔 객실 내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기 힘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24시 라면 가게는 한국의 다양한 봉지 라면을 시간 제약 없이 언제든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
편의점과도 차별화 된 무인 라면 가게가 호텔 인근에서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그야말로 뜨거운 한 끼 "라면 된다."
외국인 손님을 위해 가장 매운 라면엔 '헬'(hell·지옥)이란 글자로 따로 경고 표시가 돼 있거나 키오스크부터 즉석 라면 조리기까지 모두 영어와 중국어 등으로 안내돼 있어 한국 지리나 한국말에 서툴러 식당을 찾기 힘든 관광객이나 뜨내기(?) 외국인에게는 거진 알려진 한국 맛! 첫 경험에 가깝다고.
벽에는 형형색색의 메모지가 가득 붙어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각국의 언어 혹은 한국어로 "한국 라면 정말 맛있게 먹었다. 또 오고 싶다", "한그릇 더 주세요!", "너무 재미있다" 등의 후기를 남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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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라면 정말 맛있어요 (서울=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에 위치한 24시 무인 라면 가게에 외국인 손님들이 남긴 후기 메모들이 붙어있다. 2025.2.15.
◇ 'K-라면 성지' 확장 중…홍대·명동 넘어 동대문 상륙
'K-라면 성지'는 홍대, 명동에 이어 동대문으로 확장하고 있다.
농심은 지난달 27일 현대아울렛 동대문점에 라면 즉석 조리 매장인 '너구리의 라면가게' 동대문점을 신규 오픈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너구리의 라면가게' 명동점이 9~11월 석달간 월평균 약 1만2천 그릇을 팔아치운 데 힘입어 2호점을 연 것이다. 월평균 매출이 약 6천만원이었다고 한다.
11일 현재 동대문점 직원 3명 중 2명은 외국인이다.
외국인 손님을 위해 맵기 정도에 따라 라면들이 진열돼 있었고, 무슬림과 채식주의자를 위한 '야채 라면'도 구비돼 있었다.
직원에 따르면 순한 맛을 선호하는 이들은 '순하군 안성탕면'과 '사리곰탕'을 많이 찾고, 보편적으로 인기 있는 메뉴는 '너구리'와 '신라면'이다. 최근 출시된 '신라면 툼바'도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이 매장의 특징 중 하나는 라면에 들어가는 각종 건더기 토핑을 고객이 원하는 취향에 따라 마음껏 첨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은 매장 한가운데 설치된 너구리 마스코트 조형물과 사진을 찍는 모습도 거진 일상이다.
'너구리의 라면가게' 관계자는 "문화를 주도하고 전파하는 건 젊은 세대"라며 "이제는 K-라면을 해외 시장에 전파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전략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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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서울 도심에서 '한강 라면' 맛봐요 (서울=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현대아울렛 동대문점에 입점해 있는 농심 '너구리의 라면가게'에 즉석 라면 조리기가 마련돼 있다. 2025.2.15.
살펴 본 "라면 된다" 현상에 대하여,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 BTS와 같은 유명 K팝 아이돌이 라면을 먹는 모습이 널리 퍼지거나, 외국인들이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라면을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면서 이를 경험해보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맛있는 건 물론이고 라면이 보글보글 끓여지는 걸 보며 외국인들은 시각적인 재미까지 느낀다"면서 "무엇보다도 가격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의 라면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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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라면 특화 매장 '라면 라이브러리' (서울=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편의점 CU 홍대상상점의 '라면 라이브러리'에 외국인 손님들이 방문하고 있다. 2025.2.15.